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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대법관제청과 의견수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얼마 전 대법관 여섯명이 새로 임명됐고 엊그제에는 법원장급의인사가 이어졌다.대법관의 임기는 6년이기 때문에 이번에 새로 임명된 분들은 2000년까지 그 막중한 임무를 짊어지게 된다.
임명과정에서는 청문회를 해야 된다느니前歷을 따져 야 된다느니 해서 말도 많았었지만, 이제 이러한 소란은 물에 흘려 버려도 될 것이다.그러나 대법관의 임명절차에 대하여는 생각해 봐야 할점이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이번에 말이 나온 것이지만 사실 대법관의 임명과 관련하여 청문회를 여는 것이 온당한지에는 의문이 없지 않다.유럽대륙의 여러 開明한 나라는 물론이고 이웃 日本에서도 최고법원의 판사를 선임하는 절차로 청문회를 연다는 얘기는 별로 들어 보지 못했다.美國에 그러한 예가 있다고 하나,미국과 우리나라와는 사정이 다르다. 미국에서는 많은 경우 판사를 주민의 선거로 뽑거나 주민의 심사를 거친다.어떤 사람이 판사가 되느냐 마느냐는 그가 주민들로부터 어느 만큼 신망 내지는 인기를 얻고 있느냐에 따라결정되는 것이다.그러므로 政黨이 판사후보자를 밀어주기도 하고 배척하기도 한다.다만 연방법원의 판사는 대통령이 임명하기는 하는데,국민의 대표자인 의원들이 그 적임 여부를 감시하는 수단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바로 청문회가 아닌가 한다.
이런 미국의 제도가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판사의 임명에 대한사고방식이 유럽대륙형의 사법제도를 갖고 있는 우리와는 기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말하는 것 뿐이다.우리나라의 제도는「정치」가직업적인 법관을 임명하는 데 관여해서는 안된다 는 생각을 밑바탕으로 하고 있고,이러한 생각은 나름대로 근거가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국회가 굳이 청문회를 열겠다고 한다면 열지 못할 것은없다해도 그것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지 쉽게 수긍되지는 않는다.
그런데 각도를 달리 해서 청문회를 열자고 주장하는 이유에 들어가 보면 그에도 一理가 없지 않다.그 주장에는 누가 대법관이되는가가 우리 사회에서 法이 어떠한 모습을 갖는가에 큰 영향을미칠 수 있다고 하는 지난날의 경험에서 얻은 통찰이 담겨 있다. 재판은 법관 한사람 한사람이 혼자서 양심과 법만을 기준으로삼아서 하는 것이고,또 그렇게 돼야만 한다.누구도 구체적인 사건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할수 없다.그러므로 우리가 法에 대해가지는 희망과 기대도 궁극적으로는 개개의 法官에 게로 향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대법관은 법의 해석과 적용에 대해 최종적인 권한을 가지는 사람이니까 그러한 자리에 오르는 사람이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기에적합한 식견과 용기를 가졌는가 등등을 따져 보아야겠다는 것도 당연한 주장이라고 하겠다.문제는 이러한 당연한 주장을 제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方途가 무엇인가 하는데 있다.
현재의 제도아래서 대법관을 임명하는데 國會 동의를 얻도록 한것도 실은 그것을 위한 것이다.그러나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이는유명무실하기 쉽다.다른 한편 이 절차를 활성 화하려다 보면 자칫 대법관의 임명이 정치에 휘말리게 될 우려가 있다.
여기까지 생각해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대법원장이 대법관 후보자를 대통령에게 제청함에 있어서 적어도 제도적으로는 누구의 의견을 듣거나 할 필요가 전혀 없어 혼자의 판단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는 점이다.
물론 良識있는 대법원장이라면 그것이 제도로 정해지기를 기다릴것도 없겠고, 신문보도에 따르면 尹관대법원장도 이번에 변호사협회장등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었다고 한다.
***여론수렴 制度化 절실 그러나 어느 한사람의 지혜보다는 객관적인 제도를 믿는 것이 法治主義의 기본이다.그렇다면 차제에각계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공식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그 당시로서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자부하였겠지만,예를 들어 신분과 임기가 보장된 중견 법관을 불러다가 이런저런 이유를 들어 사표 쓰기를 종용했다든지,쓴 글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해서하루 아침에 서울서 蔚山으로 쫓아 보내던 지난 시대의 경험은 우리로 하여금 한 사람의 양식만에 의지할 수 없게 하는 것이 다. ◇필자 약력▲서울大法大졸▲베를린 자유대학▲서울大서 법학박사▲서울민사地法 판사▲서울大法大 교수(현)▲저서『民法硏究』『民法入門』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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