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 희망 이야기] 무료 순회공연 가수 남강수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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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오전 10시30분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주외동 치매노인 요양원 '샘터마을'.

10여평의 거실에서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가 치매노인 20여분에게 사탕을 들고 다가가 나눠준다. 혹시나 사탕 껍질째 먹을까 일일이 껍질을 벗긴 뒤 사탕을 전한다.

이어 전자 오르간 앞에서 "오늘은 제가 흥겨운 노래를 불러 청춘을 돌려드리기 위해 찾아왔습니다"며 노신사는 신청곡을 받는다. "민요요-." 자리에 모여 앉은 71세부터 1백2세의 연로한 노인들은 우리 가락부터 신청한다.

노신사는 즉시 익숙한 솜씨로 전자 오르간을 연주하며 '노들강변' '새타령' '쾌지나 칭칭나네' 등을 잇따라 부른다. 흥에 겨운 노인들이 한두명씩 자리에서 일어나 덩실덩실 어깨춤을 춘다. 앉아 있을 힘도 없어 보이던 노인들도 박수를 치며 즐거워한다.

1시간여 공연을 마친 그는 노인들의 손을 꼭 잡고 "건강하세요. 시간 나는 대로 자주 들르겠습니다"라고 작별 인사한 뒤 곧바로 서울의 양로원으로 위문공연을 위해 떠났다.

노래를 통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하는 외길 인생을 걷는 원로가수 남강수(본명 李東輝.66.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2동)씨. 그는 생업을 뒤로 미룬 채 남을 돕는 일에만 매진하는 연예계의 기인(奇人)이다.

南씨는 1982년부터 대한적십자사 자원봉사자가 된 뒤 22년 동안 총 1만3천여시간을 소외된 이웃들을 찾아 노래로 봉사하는 삶을 살고 있다. "제 노래가 절망에 빠진 이웃들에게 사랑을 전할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南씨는 불우 이웃을 위한 무료 공연을 하기 위해 밤무대에 거의 서지 않는다. 일주일에 한차례 방송에 출연하지만 위문공연은 10차례를 넘긴다.

그는 고통받는 이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마다하지 않는다. 주로 찾는 곳은 양로원.교도소.갱생원.사할린 동포 거주단지 등이다.

"남이 시킨다면 이 같은 봉사활동을 20년이 넘도록 지속할 수 있을까요. 목이 아프거나 몸살이라도 나면 쉬고 싶은 생각이 들긴 하지만 제 노래를 듣고 위안을 얻을 어려운 이웃을 생각하면 힘이 솟아납니다."

그는 이런 남편을 이해하고 화장품 가게를 운영하며 집안 살림을 책임지는 아내(金慶愛.58)에게 언제나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간직하고 산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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