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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E] 한국어는 한류의 ‘특급 도우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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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패션디자이너 이상봉씨가 제작한 한글 무늬 옷. 의상에 한글을 접목시켜 우리글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렸다는 평을 받고 있다. [중앙포토]

최근 유엔 산하 세계지식재산권기구는 한국어를 국제특허협력조약(PCT)의 국제 공개어로 채택했다. 이 기구에 등록되는 국제특허 관련 문건을 한국어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한국어가 국제기구에서 최초로 공식언어로 지정됨으로써 한국어 위상이 그만큼 높아지게 된 셈이다.

 요즘 한국어가 ‘잘나가고’ 있다. 외국인과 해외동포를 대상으로 시행하는 ‘한국어능력시험’ 응시생 수가 1997년 2200여 명에서 지난해 3만여 명으로 10년 동안 열 배 이상 늘었다. 7월 일본 문부과학성이 발표한 고등학교의 제2외국어 수업 실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교는 95년 73곳에서 2005년 286곳으로 네 배 증가해 독일어와 프랑스어보다 많았다. 중국의 경우 92년 한·중 수교 이후 39개 중국 대학이 한국어과를 개설했다.

 잘나가는 한국어의 우수성과 국제적 위상을 살펴보고 한국어의 세계화가 갖는 의미 등을 짚어본다.

 ◆한글의 우수성=한글은 97년 유네스코가 지정하는 ‘세계기록유산’이 됐다. 이에 앞서 유네스코는 89년 세종대왕(1397~1450) 탄신일인 5월 15일을 세계문맹퇴치일로 정하고, 문맹을 없애는 데 힘쓴 인물과 단체에 주는 상의 이름도 ‘세종대왕 문해(文解)상’이라고 붙였다.

 한글이 국제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것은 독창성과 과학성 때문이다. 소설 『대지』를 쓴 미국 작가 펄벅(1892~1973)은 일찍이 구한말을 배경으로 한 작품 『살아있는 갈대』에서 “한글은 24개의 알파벳으로 이뤄진 세계에서 가장 단순한 문자 체계지만 자·모음을 조합하면 어떤 음성도 표기할 수 있다”고 극찬했다.

 미국 시카고대 매콜리 교수는 66년 언어학회지 ‘랭귀지’에서 “한글은 혀·성대 등 목소리를 내는 데 관여하는 발음 기관을 정밀 분석해 만들어진 알파벳이어서 소리의 음성적 특징을 시각화하는 데 뛰어나다”고 설명했다.

 독일인 최초의 한국학 박사인 함부르크대 사세 교수는 “서양이 20세기에 비로소 완성한 음운 이론을 세종대왕은 5세기나 앞서 체계화했다”며 “한글은 전통 철학과 과학 이론이 결합된 세계 최고의 문자”라고 평가했다.

 ◆한국어의 위상과 세계화=지구에 존재하는 언어는 몇 개나 될까. 사용자 수로 언어 순위를 매기는 세계언어목록 ‘에스놀로그(Ethnologue·도표 참조)’ 에 따르면 2000년 현재 사용 중인 언어는 6912개. 한국어는 남북한과 해외동포 등 7500만 명이 사용해 프랑스어보다 한 단계 높은 세계 13위다.

 김주원 서울대 언어학과 교수는 “일반적으로 언어의 국제적 위상은 해당 언어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사용하느냐에 좌우된다”며 “한국어는 경제 규모가 세계 11위인 국가 위상에 어울리는 ‘메이저 언어’”라고 평가했다.

한국어의 세계화는 외국인이 한국어를 사용한 영화나 TV 드라마·도서·인터넷 문서 등을 쉽게 접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해외에 널리 보급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외국인의 한국어 사용 빈도를 늘리는 것이다.  

◆한국어의 세계화 왜 필요한가=이상규 국립국어원장은 “문화의 시대인 21세기에는 문화가 우위를 점하는 국가가 경제 강국이 될 수 있다”며 “문화를 홍보하는 가장 본질적인 수단이 언어이므로 선진국들은 자국어를 가르치고 문화를 홍보하는 교육기관을 해외에 앞다퉈 세우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영국의 경우 110개국 220곳에 ‘브리티시 카운슬’을 세워 연간 1조원 가까운 예산을 쓰고 있으며 독일도 연간 3000여억원을 들여 74개국 144곳에 ‘괴테 인스티튜트’를 운영하고 있다. 우리 국립국어원도 2016년까지 세계 200여 곳에 한글을 교육하는 ‘세종학당’을 세울 예정이다. 한국어를 세계화해 국가 성장 동력의 한 축으로 삼기 위해서다.

 한국어세계화재단 정순훈(배재대 총장) 이사장은 “국제교류를 할 때 언어가 상품이나 서비스보다 먼저 진출해야 경제적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다”며 “외국인이 한국어에 친숙해져야 영화 등 다른 콘텐트에도 쉽게 접근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한국어 자체가 부를 창출하는 주요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신승일 한류전략연구소장도 “패션 디자이너 이상봉씨가 한글 디자인을 의상에 접목해 세계인의 호평을 받은 것처럼 한국어의 세계화는 우리 문화를 확산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효과적으로 추진하려면=한국어를 효율적으로 보급하기 위해서는 세세한 전략이 필요하다. 예컨대 ‘겨울연가’ ‘대장금’ 등 인기 TV 드라마를 한국어 교재로 보급하거나 이를 소재로 한 사용자 제작 콘텐트(UCC) 공모전이나 백일장을 열어 한류 특수를 한국어 수요로 흡수하자는 것이다. 한국문학을 소개할 때도 현지 번역가를 적극 활용, 현지인의 눈높이에 맞추고 한글 서체를 다양하게 개발해 상품 이미지로 활용하자는 견해도 없지 않다.

 한국어와 한국문화 보급을 추진하는 부처 간의 업무도 재조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있다. 한국어 세계화를 추진하는 문화관광부·교육인적자원부·외교통상부 등의 역할을 세분화해 유기적으로 연결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국민의 한국어 ‘사랑 지수’도 점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광운대 등 일부 대학에서 국어국문학과 존폐 논란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장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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