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음 대통령, 취임 초 공기업 개혁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1면

낙산해수욕장이 있는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일대 약 3만㎡ 부지에 지상 4층, 지하 1층의 연수원이 들어서고 있다. 내년 말 완공될 이 건물은 110개의 객실과 옥외 풀장, 골프 퍼팅연습장을 갖추고 있다. 지역 주민들은 "연수원이라기보다 고급 휴양시설에 가깝다"고 말한다.

이 연수원의 주인은 한국철도공사(코레일). "충남 무창포와 강원도 망상의 연수원이 비좁아 새로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코레일은 고속철도 인수에 따른 부채(4조5000억원)로 매년 나랏돈 1조원을 수혈받는 공기업이다. 해마다 적자가 5000억원이 넘는다. 사정이 이런데도 주거래은행에서 350억원의 철도발전지원금을 받자 바로 최신식 연수원 건축에 쓰고 있는 것이다.

'신이 내린 직장'이라는 공기업은 산업재해도 특이하다. 한국은행.산업은행.신용보증기금 같은 국책금융회사의 산업재해는 절반 이상이 축구나 운동을 하다 다친 것이다. 국회 재정경제위원회 이목희 의원이 근로복지공단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담겨 있는 내용이다. 2003년부터 올 8월까지 이들 금융회사에서 산재 승인을 받은 59명 중 31명의 사유가 체육행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공룡화된 공기업의 개혁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가 됐다. 방만 경영.도덕적 해이로 인해 누적된 국민적 비판과 분노 때문이다. 기획예산처 홈페이지에 따르면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101개 공기업과 준정부기관의 인력은 8.4%(1만2000여 명) 증가했다. 부채도 109조원에서 150조원으로 38%나 늘어났다. 피나는 구조조정으로 부채를 줄이고 생산성을 높인 민간기업과 대조적이다. 거꾸로 공기업에 대한 정부지원금은 크게 늘었다. 같은 기간 정부지원금은 34조원에서 48조8000억원으로 44% 증가했다. 비대해진 공기업의 부실을 국민 세금으로 메운 셈이다.

그동안 수없이 공기업 개혁을 외쳤지만 개선될 조짐은 찾기 어렵다. 1968년 이후 여섯 차례의 공기업 수술 작업은 번번이 실패했다. 외환위기 때 김대중 정부만 부분적인 성과를 냈을 뿐이다. 현 정부는 공공기관운영법을 만들어 공기업 감시를 강화한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모습은 그들을 두둔하는 쪽이었다. 공기업 감시를 구실로 기획예산처 공무원만 절반 이상 늘어났다.

류상영 연세대 교수는 "공기업의 생존본능은 대단하다"며 "그동안 반복된 어설픈 수술이 결국 내성만 키운 꼴"이라고 진단했다. 실제로 공무원연금공단은 지난해에도 공무원 자녀에게 5625억원의 대여장학금을 무이자로 제공했다. "일반인과 형평성에 어긋나니 민간에 이양하라"는 경영평가단의 권고는 완전히 무시했다.

이에 따라 누가 다음 대통령이 되더라도 집권 초기부터 강력하게 공기업 개혁을 밀어붙여야 한다는 주문이 많다.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는 2001년부터 우정성 개혁을 추진했다. 하지만 우정성은 지난해 고이즈미 총리가 물러난 뒤에야 민영화 수순을 밟고 있다. 79년 취임하자마자 진행된 영국 대처 전 총리의 공기업 개혁도 90년대 들어서야 효과를 보기 시작했다.

공기업 개혁을 관료의 손에 맡겨놔선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현 정부 들어 사회안전망 구축을 빌미로 공공부문을 확대했지만 정작 퇴직 관료들과 공기업 임직원의 안전망만 강화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비판 때문이다. 김광수 강원대 교수는 "공기업 개혁은 노조와 관료집단 양쪽의 저항을 극복해야 한다"며 "정권 초기에 대통령이 압도적인 국민여론을 등에 업고 작심하고 밀어붙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동근 명지대 교수도 "낙하산 인사 근절과 민영화 등 근본적 수술 없이는 미봉책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 : 정경민 차장, 박혜민·윤창희·손해용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