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 "교과서대로 살겠다" 정도만 걷는 교통순경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이런 것이 장진 코미디의 매력이다. 심각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하게 터지는 엇박자 웃음. 역설과 아이러니, 엉뚱함이 키워드다. 보는 이의 배꼽을 빼놓겠다 작정한 코미디라기보다는 어리둥절 뒤통수를 맞은 듯한 느낌, 혹은 피식피식 실소가 오히려 강한 여운을 남긴다. 연극 무대에서처럼 한 공간에 모여든 인물들은 뻔한 코믹 연기 없이도 관객을 웃긴다.

장진 감독이 기획·극본·제작을 맡고 ‘아는 여자’ ‘박수칠 때 떠나라’의 조감독을 지낸 라희찬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주연은 ‘킬러들의 수다’에서 ‘거룩한 계보’까지 줄곧 장진의 단짝이 돼 온 정재영. 장 감독이 기획·극본·제작으로 물러앉고, 조감독을 ‘입봉’(감독 데뷔)시킨 것이 ‘웰컴 투 동막골’(감독 박광현)과 유사한 모양새다.

원작은 사이토 히로스의 소설 『노는 시간은 끝나지 않았다』를 영화화한 하기니와 사다이키 감독의 영화다. 장진식 유머 한쪽에 ‘장인의식’을 강조하는 일본풍도 감지된다.

지방 소도시의 교통순경 정도만(정재영). 융통성이라곤 0%의 바른생활 사나이다. 원래 강력계 형사였으나 지사가 연루된 비리 사건을 원칙대로 조사하다 좌천된 신세다. 교통순경으로 일하면서도 타협을 모르는 깐깐함은 여전하다. 부임 첫날 출근하는 경찰서장(손병호)에게 딱지를 뗀다.

하루빨리 실적을 내 지방에서 벗어나려는 서장은 연쇄 은행강도 사건이 터지자 이벤트성으로 모의훈련을 제안한다. 강도 역을 고집불통 정도만에게 맡긴 것이 문제의 발단. 진짜처럼 하라는 서장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정도만은 철저한 사전준비로 특수기동대까지 무력화시키며 살벌한 인질극을 벌인다. 이 내용이 TV로 중계되면서 상황은 점점 커진다.

기발한 상황과 입담. 장진 감독은 그 자신이 창의적인 극작가임을 또 한번 입증했다. 한걸음 물러서 전체를 조율하는 프로듀서의 역량도 유감없이 발휘했다. 신예 라희찬 감독은 너무도 분명한 장진 스타일의 서명 속에서 안정적이고 자연스러운 흐름을 끌어냈다.

정재영의 연기도 합격점이다. 자칫 비현실적으로 보일 수도 있는 정도만 역을 뚱하고 무표정한 얼굴로 잘 살려냈다. “처음엔 정도만 캐릭터가 상식선에서 잘 이해가 안 갔다”는 그는 “(영화의) 결론으로밖에 갈 수 없는 인물로 만들어 관객을 설득시키는 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부조리극처럼 펼쳐지는 은행 안 가상의 인질극 장면이 압권. 주진모·이철민 등 노련한 배우들의 연기호흡이 좋다.

모의강도 훈련은 고지식한 정도만(정재영) 때문에 진짜 뺨치는 인질극이 돼 간다. 기발한 착상과 배우들의 연기 호흡이 좋다.

사실 영화의 주제는 ‘정도만’이라는 이름과 영화 제목에 다 담겨 있다. 정도만은 비타협·원칙주의자, 혹은 시쳇말로 ‘꼴통’ ‘또라이’ 캐릭터다. ‘바르게 살자’란 교과서처럼 바르게 사는 이가 오히려 손해보고 바보 취급을 받는 현실에 대한 패러디다. 그러나 주어진 명령에 충실한 ‘꼴통’ 경찰이 던지는 사회적 메시지가 좀 더 정련됐으면 하는 아쉬움도 있다. ‘바르게 살기’가 우리 사회의 고질병인 대충주의·편법주의· 봐주기에 맞서는 것은 틀림없지만, 한편으론 명분과 구두선에 집착하는 근본주의·순혈주의와도 묘하게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화 성공의 최대 관건은 장진식 엇박자 코믹 코드에 얼마나 관객이 공감하는가의 여부다. ‘장진 월드’에 유쾌히 승선하는 이들과 뭔가 낯설게 느껴지는 이들 사이에는 제법 공감의 편차가 있을 듯하다. 18일 개봉. 15세 관람가.

양성희 기자

주목! 이 장면
인질 강도극을 벌이라는 명령은 받았지만, 언제 어떻게 끝내라는 명령은 받지 못한 정도만. 과연 그가 벌이는 엉뚱한 상황극의 끝은 어디일까. 경찰을 따돌리고 인질과 함께 바닷가로 이동한 그는 결국 ‘영화 같은’ 최후의 한 장면을 연출한다. 허둥대는 경찰 앞에서 보기 좋게 ‘빵’ 한 방. 재기가 느껴지는 결말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