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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생활새풍속>24.제값 다주곤 안산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1면

중소기업체 부장인 高모씨(39.여)는 2주일전 백화점에서 맘먹고 산 24만원짜리 원피스를 다음날로 물려버렸다.보는 순간 마음에 들어 샀지만 집에와 곰곰 생각해보니 가격이 너무 비싸고세일기간에 사면 훨씬 싸게 살 수도 있다는 생각 이 들었기 때문이다. 『2~3년전만해도 20만원대 옷을 꽤 산 것 같은데 요즘은 세일이니,재고전이니 해 옷을 싸게 살 기회가 많아 비싼옷은 꺼려져요.』 高씨는 자신이 입고 있는 꽤 보기좋은 검은색바지와 재킷 한벌을 백화점 한켠에 쌓아놓고 파는 판매대에서 4만9천원에 샀다며 자랑스럽게 보여줬다.
아침부터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던 지난 15일 오전 10시 직전 서울명동 롯데백화점앞은 개장을 기다리는 1천여명의 인파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이들은 이날부터 시작되는 여름 정기 바겐세일에서 사람들이 붐비기 전 일찌감치 장을 보기위해 몰려든 사람들.이날 하루 입점객 수는 15만여명선.평소 최고 7만~8만명선과 비교하면 두배나 되는 숫자다.
백화점 관계자들은『요즘 세일이 아니면 장사가 안된다』고 푸념이다.롯데측은 지난 봄세일 10일간의 판매 액수가 그달 매출액의 70%를 차지했을 정도.백화점들은 1년 40일간 세일판매액이 전체 판매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91년 평균 20%를 넘어서기 시작,올해는 30%를 넘을 것으로 예측한다.
나머지 70%도 소위「정상가」판매로 벌어들이는 것은 아니다.
평상시 백화점에 가보면「○○기획전」「××창고전」등의 이름으로 품목별로 돌아가며 1년내내 열리는 유사 세일에만 소비자들이 몰리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한 백화점 관계자는『실제로 이런 행사들이 없으면 그나마 유지하기도 힘들다』고 말한다.
李炯淑씨(30.주부.서울상계동)는 식료품.비누.치약등을 사기위해 토요일 근무가 없는 남편과 함께 창동에 있는 디스카운트 매장에 간다.
인근에 백화점 슈퍼마켓이 몇개나 있어도 창동까지 차를 몰고 가는 이유는 슈퍼마켓보다 10~20%정도 값이 더 싸다는 이유때문.꾸러미로만 판매하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이 사다 놓고 써야하지만 이것이 훨씬 이익이라고 말한다.
『백화점은 물건값에 매장 꾸밈이나 안내인 비용까지 포함시키는것 같아 손해보는 느낌이에요.』 李씨는 백화점은 유명 브랜드 옷의 할인행사등을 이용하기 위해 가는 정도.그는『요즘은 유명 디자이너의 옷들도 그 시즌만 지나면 호텔.백화점등에서 쌓아놓고절반값 이하로 팔아 제값 다 주고 물건을 사면 손해』라고 말한다. 80년대「물건이 안팔려 물건값끝에 0을 하나 더 붙였더니팔리더라」는 말이 유행했을만큼 유통가를 지배했던,비싸야 팔린다는 신화는 깨졌다.
최근 소위 거품경제가 수그러들면서 소비자들 사이에는「싸야 산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가고 있다.그렇다고 질이 떨어지는 싼 물건이 아니라 질좋은 유명상표의 정상품이지만 깎아줘야 산다는 것. 이에따라 유통업체들도 디스카운트 스토어,아웃렛매장,회원제할인매장등 깎아주기 新업태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게다가 삼성.럭키금성등 재벌기업들까지 이에 가세,앞으로 소비자 권장가격의유통가격은 유명무실해질 전망.
이에 대해 한 백화점관계자는『요즘 소비자들은 알뜰을 넘어 할인중독에 걸린 것같다』며『그러나 이것은 그동안 유통업계의 높은마진등 비합리적 관행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신으로 받아들이며 반성하고 있다』고 말한다.
반면 李勳求교수(연세대심리학과)는『후진사회일수록 물질적 풍요를 자기 과시로 삼는「졸부문화」가 성하고,선진화될수록 건전한 중산층의「실속문화」가 자리잡는다』며『우리 사회가 선진화돼가는 단계에서 나타나는 실용적 소비생활의 패턴으로 이해 할 수 있다』고 말한다.
〈梁善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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