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성 방광염 치료, ‘젓가락 걷기’의 마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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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명 ‘오줌소태’라 불리는 방광염 환자가 늘고 있다. 하지만 흔하고 가벼운 질병으로 여겨 약국에서 아무 항생제나 사먹는 사람들이 많다. 서울 삼성병원의 민경준 교수는 이를 매우 위험한 행동으로 지적한다. 방광염은 치료하기가 까다롭지는 않지만 항생제를 잘못 택할 경우 균들의 내성을 키워주는 역효과를 일으킨다. 또한 다른 종류의 균들이 이중감염을 유발해 치료가 더욱 어려워진다. 심하면 신장(콩팥)까지 감염이 번져 그 후유증이 전신에 뻗칠 수도 있다. ‘세균성 염증’에 해당하는 방광염은 방치하거나 자가진단으로 해결하지 말고 곧장 병원을 찾아야 한다.
세균성 염증으로 인한 방광염보다 치료가 까다로운 것은 신경성 방광염의 경우다. 분명히 방광염 증상이 나타나지만 정밀 검사를 해봐도 세균감염의 흔적이 없는 유령질환이라 뚜렷한 치료방법이 없다. 이런 경우 충분한 휴식과 안정을 취하고 일상생활에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신경성 방광염으로 오랫동안 고생한 김명자 씨(57)는 걷기 운동을 통해 병을 극복한 사례다.

방광염 증상
-소변이 자주 마렵고 배뇨 시 통증을 느낀다.
-소변을 봐도 시원찮고, 피가 섞여 나온다.
-아랫배가 무질근하거나 허리가 아프다.


전남 진도군 지산면의 김명자 씨는 불과 오 년 전만 해도 신경성 방광염으로 인해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 했다. 몇 분 간격으로 화장실을 들락날락 할 정도로 중증이었는데도 병원에서는 매번 별 다른 이상이 없다고만 했다. 그저 ‘마음을 편히 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다. 단 하루라도 마음 편히 잠을 잘 수 없었던 김명자 씨는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보다 못해 남편이 결단을 내렸다. 전원생활을 하면서 당뇨를 치료한 친구의 사례에 힘입어 시골로 내려가기로 한 것이다. 시골에서라면 조용하고 여유롭게 산책도 하며 건강을 돌볼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사에 얽매여 그 흔한 노래방 한 번 가본 적이 없던 김 씨는 하루 두 세 시간씩 가벼운 마음으로 산책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했다. 놀랍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걷기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산책을 통해 심신의 안정을 취하자 이것이 자연스럽게 치료로 이어진 것이다. 하룻밤에도 수십 번씩 화장실에 가야했지만 이제는 그 횟수가 크게 줄어 한두 번에 그친다. 김 씨는 방광염뿐만 아니라 두통과 위염 이명(耳鳴) 등 여러 가지 신경성 질환을 앓고 있었는데 이제는 거의 완치 단계에 접어들었다고 한다. 입에 달고 살았던 두통약과 위장약은 이제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었다.
아내 덕에 의사가 다 되었다며 농담을 던지는 남편은 조금 남아 있는 이명 증세도 걷기로 치료해 보이겠다고 의지를 밝혔다. 귀찮아서 빼먹고 싶을 때도 있다는 걸 알지만 그러다 습관이 될까봐 자신이 출장을 가는 날에는 아내 혼자서라도 반드시 걷게 한다고 했다. 사실 남편이 내놓은 치료책은 명쾌했다. 부부가 함께 걷기 시작하라는 것.
“잠을 못 자서 비쩍 말랐던 사람이 보기 좋게 살도 오르고 잘 먹고 잘 자니 더 바랄 거 없습니다. 신경성 질환에는 즐거움 이상의 치료법이 없으니 가족들이 나서서 도와줘야 합니다. 특히 부부가 함께 산책을 하는 것은 몸과 마음이 동시에 건강해지는 최상의 치료법이죠. 아내를 위해 걷기 운동을 시작했지만 한 오년 걸었더니 제 몸도 아주 건강해졌어요. 가족 중에 신경성 방광염을 앓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처럼 해보세요, 틀림없이 좋아질 겁니다.”
어느덧 도시와 시골을 번갈아 다니며 생활할 정도로 몸이 건강해진 아내 김 씨는 나름대로 자신만의 걷기 노하우를 만들어냈다. 김 씨의 산책에 동행해 보았는데 걷는 자세가 특이했다. 마치 관절이 고정되기라도 한 듯 다리를 곧게 펴서 걷는 게 아닌가.
김 씨는 병원에서 약물 치료보다는 ‘케겔’과 같은 여러 운동 요법을 추천받았지만 일일이 실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명자 씨만의 동작이 바로 ‘젓가락 걷기’다. 깁스를 한 듯 다리를 쭉 펴서 걸으면 자연스럽게 아랫배에 힘이 들어가 방광운동이 된다. 김 씨는 의사선생님마저 다른 환자들에게 ‘김명자표 젓가락 걷기’를 추천한다며 보기 좋게 웃는다. 심형래의 영구 춤 같기도 하고 리마리오의 오버액션 같기도 하지만 명자 씨에겐 건강과 행복을 물어다 주는 명약과 같은 동작이다. 따라해 보니 크게 어렵진 않았지만 수년간 단련한 김 씨만큼 자연스럽게 걸으며 속도를 내기는 무리였다.
곧이어 흙길이 나오자 명자 씨는 살랑살랑 허리를 흔들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자의 ‘동백 아가씨’를 구성지게 뽑아내며 흙길을 재미나게 걷는다. 그리고 남편 자랑을 보탠다. “우리 아저씨 아니었으면 아직도 오줌소태 때문에 잠도 못자고 날마다 병원에 다닐 텐데 내가 신경은 좀 예민해도 배필 하나는 잘 만났지?”
리듬에 맞춰 걷는 그녀의 동작 하나하나에 아내에게 걷기를 권한 남편의 따뜻한 마음이 묻어난다. 걷기를 즐겁고 건강한 삶으로 만든 명자 씨 부부는 잘 걷는 게 잘 사는 것임을 증명한다.

설은영 객원기자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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