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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내 「개혁모임」/대선후 「평민연」「민련」결합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하부조직에 운동권출신 후배들 포진… 영향력 행사
김일성 조문 발언 파동으로 정치권에 소용돌이를 몰고온 야당의원들은 민주당내「민주개혁정치모임」 소속 의원들이다.
이들은 재야의 경험을 살려 정치권의 개혁을 내세우고 있으며 이번의 조문파동도 그들의 진보적 성향에 밑바탕을 두고있다.
물론 김일성 조문이 개혁모임의 공식입장으로 채택된바는 없으며 민주당의 당논과도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북한의 「조문단 환영」 성명이 논란의 불길을 부채질하는 격이 됨으로써 파문은 더욱 확산일로에 있다.
개혁모임의 당사자들도 「소신」을 굽히지 않고 있으며,한총련등의 운동권은 한걸음 더 나아가 정부차원이 아닌 개별조문까지 들고나와 걷잡을 수 없는 대북관의 혼란도 우려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혁모임은 다른 계보와 중첩되는 일부의원까지 포함하면 소속의원 20명으로 민주당내에서 만만치 않은 세력을 구축하고 있다.
이들은 14일의 3차 정기이사회에서도 잠시 거론했듯 다음 전당대회에서 독자적으로 당대표에 도전할 의사까지 내비치는등 당의 주도권을 넘보기도 한다.
현재와 같은 당내 독자그룹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연원은 지난 87년 대선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재야인사들 중 DJ(김대중 평민당후보)를 지지하는 비판적지지론자(비지파)들과 사실상 YS(김영삼 통일민주당후보)쪽에선 후보단일화그룹중 일부가 모인 것이 개혁모임의 뿌리다.
비지파는 대선후 88년 평민당에 입당,「평민연」을 만들고 단일화파중 일부는 전민련등에서 활동하다「민련」을 구성,3당합당 후인 91년 민주당잔류파와 합치게 된다.
92년 총선으로 다수가 원내로 진출한 민련·평민연그룹은 대선전 김대중 당시 민주당대통령후보 선거지원과 당내개혁을 내걸고 개혁모임을 결성했다.
조문파동의 당사자인 이부영·임채정의원은 바로 이 「민련」과 「평민연」의 대표적인 인물이다.
○…주로 70년대말·80년대초 재야에서 민주화운동의 주역으로 활동해온 이들은 비록 제도권으로 진입하긴 했지만 운동권의 후배그룹과 완전하게 연을 끊지 못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후배운동권 그룹중에서 학생·노동운동을 통해 80년대 중반이후 민주화운동 경력이 있는 세력은 현재 정치권 주변에 폭넓게 자리잡아가고 있다.의원보좌진이나 당의 중·하위당직자 또는 개혁모임의 실무진등으로 활동하는 운동권 출신들은 개혁모 임의 하부조직이다.
이들은 개혁모임내의 청년위원회와 여성위원회등에서 활동하며 야권의 개혁그룹과 최근의 운동권 출신및 운동권과의 끈을 잇고 있다.
그중에서도 청년위원회에 속한 청년조직은 대부분이 학생운동권 출신들로서 만만찮은 세를 갖고 개혁모임의원들에게 유·무형의 영향을 행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한당직자는 『이의원등이 조문파동에 처음 대국민 사과를 하는등 주춤하다가 다시 강경입장으로 전환한데는 이들 청년그룹의 내부 압력등 입김도 크게 작용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진단했다.
○…개혁모임 조문발언 의원들은 북한이 남한의 조문사절단을 받아들이겠다고 발표한데 대해 개별입북은 반대하고 있다.
조문외교는 정부차원에서 검토하자고 제안한 것이며 그렇다고 개별입북을 고려한다거나 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이들의 개인적인 주장이다.
민주당 박지원대변인은 정부가 반대한다면 절대로 평양에 가서는 안된다고 한총련의 입북의사에 제동을 거는 당론을 표명하기도 했다.〈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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