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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가용 출퇴근 교통사고' 공무원만 보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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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출퇴근 중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경우 공무원 가족은 유족급여를 받는 반면 일반 근로자들은 받지 못하는 현행 제도의 문제점을 대법원이 인정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지형 대법관)는 자가용으로 출근하다 교통사고로 숨진 자동차공업사 직원 김모씨의 부인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를 주지 않은 것은 부당하다"며 낸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7일 밝혔다.

재판부는 일단 '업무상 재해가 되려면 출퇴근 과정이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어야 한다'는 기존 판례를 재확인했다. 그러나 "업무상 재해의 인정범위를 넓힐 필요가 있지만 사법부가 법 해석을 통해 판단하는 것은 삼권 분립의 취지에 어긋나고 국회에서 입법을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출퇴근이 노무 제공 업무와 밀접.불가분의 관계가 있다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출퇴근 방법과 경로의 선택이 근로자에게 있어 사용자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산업재해보상 보험법에 출퇴근 중 사고를 업무상 재해로 인정한다는 특별한 규정이 없는 이상 업무상 재해로 인정할 수는 없다"고 판결했다.

현행 산재보험법에는 일반 근로자의 출장 중 사고와 휴식시간 중 사고에 대한 업무상 재해 규정은 있지만, 출퇴근 교통사고에 대한 규정이 없다. 반면 공무원.군인.사립학교 교원은 출퇴근 시 교통사고를 당하면 공무원연금법.군인연금법.사학연금법상 통근재해를 인정받고 있다. 따라서 형평성 논란이 일어왔다.

국회에 계류 중인 산재보험법 개정안은 업무상 재해의 인정 기준을 세분화했다. 또 '업무와 사고 사이에 상당 인과관계가 있는 사고' 규정을 신설해 인정 범위를 대폭 넓혔다. 출퇴근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놓은 것이다.

이번 판결에는 출장 중인 김용담 대법관을 제외하고 12명의 대법관이 참여했다. 김영란.박시환.김지형.김능환.전수안 대법관 5명은 반대의견을 냈다. "반복적 출퇴근은 사업주가 정한 시각과 근무지에 구속되므로 사업주의 지배.관리하에 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들은 "사업주가 교통수단을 제공하면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고, 대중교통이나 도보로 출퇴근하는 경우에는 인정하지 않는다면 차량유지비를 지급한 사업주가 그렇지 않은 사업주보다 오히려 책임부담이 더 많아진다는 불합리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안대희 대법관 등은 다수의견에서 "국가가 재정여건 등 여러 사정을 감안해 선별적으로 수혜를 확대하는 것은 평등원칙에 위배되지 않는다"며 "통근재해 인정범위는 입법으로 해결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밝혔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해 출근길에 차가 빙판에 미끄러져 사망한 정모씨의 유족이 낸 소송에서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한 근로자의 교통사고는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는데, 불안전하고 불편한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근로자의 교통사고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불합리하다"며 원고 승소 판결하기도 했다.

출퇴근 중 사고에 대해 오스트리아는 1917년, 독일은 25년, 프랑스는 46년에 산업재해 유형으로 인정해 왔다. 일본도 73년 노재(勞災)보험 대상으로 삼아왔다. 국제노동기구(ILO)는 64년 제121호 협약에서 출퇴근 중 사고를 산업재해에 포함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박성우 기자

◆유족급여=근로자.교원.군인 등이 사망한 경우 그 유족에게 지급되는 돈. 일시금과 연금 형태가 있다.급여의 구체적 액수는 산업재해보상보험법, 공무원 연금법, 국민연금법, 군인연금법, 사립학교 교직원연금법,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에 개별적으로 규정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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