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체제 얼마나갈까/가미야 후지(해외전문가 긴급진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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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초기안정 2∼3년후 붕괴/“아버지와 차별화”가 계기
『그것은 아마 먼 훗날이 아니라 가까운 장래에 일어날 것이다.그때까지는 눈앞의 일에 일희일비 우왕좌왕할 것이 아니라 냉정하게 사태를 지켜보는 자세야말로 중요하지 않을까.』 북한 핵문제가 점점 심각해지고 있던 몇개월전 나는 이런 말을 반복했다.「그것」이란 김일성의 사망이었다.
김일성은 82세의 고령인데다 북한이 처한 국내외의 심각한 상황으로 큰 심리적 압박을 받고 있어 얼마나 버틸지 의문스럽다는 예상은 내가 얼마전 중앙일보에 기고한 글에 명확히 나타나 있다.그 결정적인 때가 의외로 빨리 찾아왔다.
김일성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바로 김일성체제의 「종말의 시작」이다.
과거 20년동안 평양은 김일성의 후계자가 김정일인 점,그리고 김정일이 「대를 이어」 김일성체제를 견지할 것이란 점을 강조해왔다. 그러나 20년이나 되는 긴 세월에 걸쳐 강조해야만 했던 것은 역설적으로 그것이 정착될 수 없는 미진한 꿈임을 증명하는 것이다.
김정일은 정권을 계속 유지시킬 것이나 장기 안정적 정권이 되긴 힘들다.
북한의 향후 시나리오는 어떨까.내 견해로는 ①당분간,즉 매우 가까운 장래는 낙관적②그러나 가까운 장래를 2,3년의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비관적 ③그렇지만 장기적으로 전망하면 낙관적이라 판단된다.물론 이러한 판단의 근거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하다.
①부친 사망직후 아들이 장례위원장에 지명된 것은 김정일에 대한 권력세습이 예정대로 진행되고 있음을 의미한다.「당분간 낙관」은 이런 뜻이다.그러나 김정일정권은 오래 끌지는 못한다.
여기서 나는 오랜 지론을 또 한번 말하고 싶다.과거 소련에서 스탈린 사후「비스탈린화」가 진행되었다.중국에서도 마오쩌둥(모택동)사후에는 「비모화」가 시대의 조류였다.이와 같이 김일성사후 북한에서는「비김일성화」가 지배적 조류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그것은 장기독재정권이 필연적으로 걸어가야할 역사적 법칙인 것이다.
김정일정권이 장기안정화될 유일한 조건은 김정일이 「비김일성화」운동의 선봉에 서는 길이다.그러나 김정일은 이미 오랜세월 자신을 김일성체제와 일체화시켜온 이상 이제와서 새삼 「비김일성화」운동의 이니셔티브를 쥘 수는 없다.김정일은 결국 「비김일성화」의 흐름에 의해 부친과 함께 부정될 존재인 것이다.
②이리하여 김정일정권은 몇년내에 붕괴될 것이다.그것이 「2,3년의 시간으로 생각한다면 비관적」이란 의미다.
아들이 부친만큼의 카리스마와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것은 누가봐도 명확하다.「비김일성화」현상의 불가피성에다 리더십까지 부족한 이상 김정일정권의 단명은 미뤄 짐작할 수 있지 않을까.
③김정일정권의 붕괴=「비김일성화」의 실현은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천천히 「소프트 랜딩」하는 형태의 진행과 급격한 격돌형의 진행등으로 생각되는데 전자보단 후자가 될 가능성이 클 것이다.중국과 같은 점진적인 체제변혁을 이루기엔 북한은 이미 늦어버렸다.김일성은 너무 장수했다.설령 김정일이 중국형의 「개혁·개방」을 적극 추진한다해도 그것은 북한의 체제변혁을 가속화시킬 뿐이다.「소프트 랜딩」의 길을 준비하기보단 격렬한 진행을 한층 앞당길 것임에 틀림없다.
어쨌든「비김일성화」의 진행은 상당한 격동과 혼란을 수반하며 진전될 것이다.한국은 물론 일본을 포함한 주변국가들은 그 격동에 의한 여러 형태의 압박을 피할 수 없다.그러나 그 다음에 나타날 광경은 결코 비관적이지 않다.「장기적으로 전망해서 낙관적」이라고 말한 것은 이런 뜻이다.
김일성체제의 붕괴=「비김일성화」의 실현은 북한을 한국동란,청와대 게릴라습격사건,아웅산 폭파테러사건등 흉폭한 폭력행위를 태연하게 자행하는 특이한 국가에서 「보통국가」로 전환시킬 수 있는 큰 계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러한 체제변혁의 진행이 한반도 통일을 위한 조건 정비를 의미한다는 사실이다.
최근 2,3년동안 일부 한국인들은 독일통일의 선례를 보며,「한국이 북한을 흡수통일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이 오면 큰일이다」「구서독만큼의 경제력을 갖고있지 못한 한국은 혼란한 북한을 등에 업을 힘이 없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분단국 가의 통일이란 흡수할 측이 바라는 타이밍과 조건으로 실현될만큼 간단한 일이 아니다.기다릴 수 없는 사태가 도래해 한쪽 체제가 붕괴된다면 다른 한쪽은 바라거나 바라지않거나 이를 등에 업지않을 수 없다.
그러한 큰 혼란이 예상된다손 치더라도 한민족 통일의 커다란 기회가 김일성체제의 「종말의 시작」을 계기로 드디어 도래하고 있다. 한국과 한반도에 있어서,그리고 동북아시아 전체에 있어서 처음으로 호기가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게이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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