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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팔트 정글의 법칙 - 브레이브 원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0호 14면

라디오 진행자인 에리카 베인(조디 포스터)은 결혼을 앞둔 연인과 함께 산책하다가 불량배들에게 폭행을 당한다. 연인은 죽고 에리카는 혼수상태에서 겨우 깨어난다. 그리고 에리카는 복수를 한다. 간단한 줄거리만 들으면 찰스 브론슨 주연의 ‘데드 위시’(1974) 여성판이 아닌가란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브레이브 원’은 복수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변화하는 에리카의 내면에 카메라를 깊숙이 들이댄다.

에리카는 뉴욕의 곳곳을 돌아다니며 갖가지 소리를 녹음하고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방송으로 들려주었다. 하지만 안전하고 평화롭다고 믿었던 뉴욕은 한순간에 지옥으로 변해버렸다. 거리에 나가는 것조차 두려워진 에리카는 총을 산다.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엇인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그리고 다시,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는 폭력적인 상황을 만난다.

에리카의 선택은 복수였다.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는 그를 죽여야만 한다. 에리카는 결코 자경단(自警團)이 아니다. 에리카는 단지 자신을 위협하는, 폭력을 행사하기 위해 다가오는 악인만을 죽인다.

따뜻한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던 에리카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아스팔트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폭력을 선택할 줄 아는 들짐승이 되었다.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도, 자신이 너그럽게 그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 길로 가는 것만이 에리카가 생존할 수 있는 길이었다.

‘크라잉 게임’의 닐 조단은 사회적 약자에게 늘 관심을 기울인 감독이었다. ‘브레이브 원’에서는 끔찍한 폭력을 겪은 희생자가 어떻게 변화하는지, 변화할 수밖에 없는지를 보여준다. 차분하면서도 감각적으로 에리카의 변화를 따라간다. 그리고 에리카의 대척점에 있는, 법의 수호자이면서도 그것의 한계를 느끼고 있는 형사의 고뇌를 통해 ‘폭력’과 ‘정의’에 대해 문제제기를 한다. 에리카의 변화를 단지 개인의 문제만으로 국한하지 않고, 사회적인 문제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브레이브 원’은 우리 사회의 치명적인 문제를 내밀하게 다룬 용감한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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