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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수 '마지막 자존심마저 짓밟혔다'

중앙일보

입력

지난 1월 고종수(29·대전시티즌)는 백의종군했다. 2005년 말 전남 드래곤즈서 임의탈퇴된 후 1년간 무적 상태로 헤매다 축구에 대한 일념으로 우여곡절 끝에 대전 유니폼을 입은 것이다. 연봉은 구단에 백지위임했고, 대전은 연봉 2400만원을 제시했다. 그는 말없이 계약서에 사인했다. 대신 구단에 공개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았다. 액수는 문제되지 않았지만 한 때 최고 연봉을 자랑하던 그였기에 200만원의 월급이 알려지기 원치 않았다.

그를 잘아는 몇몇 기자들도 이 사실을 전해들었지만 그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주기 위해 기사화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나 대전지역의 한 언론이 5일 대전 시티즌 구단 자료를 인용해 고종수의 연봉을 공개했다. 출처가 대전 구단 관계자였던 것으로 알려지자 고종수는 배신감에 화가 머리 끝까지 났다. 3경기 연속 풀타임 출전에다 1골 1도움을 기록하는 등 한창 상승세를 타는 마당에 연봉을 공개해버린 구단의 처사가 야속했다. 물론 고종수는 승리수당 250만원, 공격포인트수당 300만원, 풀타임 출전수당 700만원을 별도로 받아 최근 3경기만 따져도 연봉을 훨씬 상회하는 3200만원을 손에 쥐었다.

그러나 구단에 대한 배신감은 쉽게 회복할 수 없었다. 김호 대전 감독에게 제주 원정에 따라가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김감독은 고종수를 따로 불러 다독이는 한편 6일 오전 구단 사무실로 찾아가 구단 관계자들에게 이 문제를 따져 물었다. 하지만 구단 관계자들은 서로 발뺌만할 뿐이었다. 6강 플레이오프 진출에 집중해야할 때 고종수의 연봉 공개는 다른 선수들까지 심란하게 만들었다.

고종수는 결국 6일 제주로 떠나는 대전 선수단을 힘없이 따라 나섰다. "축구가 정말 즐겁다"며 환하게 웃던 표정은 온데 간데 없고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최원창 기자 [gerrard@jes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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