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정신적 혼돈… 기존노선 고수(김일성사후의 한반도: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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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오랜수업」 김정일,동요수습 2년이 고비/“위기타개” 겨냥 남북관계개선 나설지도
갑작스런 김일성주석의 사망으로 북한사회는 비통과 집단충격에 빠져있다.
권력의 향배는 어떻게 되며 사회안정은 언제 가능할지,이런 극적인 상황이 남북관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전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북한 내부는 일단 20여년전에 후계자로 결정돼 통치자훈련을 받고 당·정·군을 실질적으로 통치해온 김정일비서가 당총비서·국가주석등의 대권을 이어받는 쪽으로 가닥이 잡힐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은 김정일이 앞으로 2∼3년내에 권력을 안정화시키고 산적한 국내외 문제들을 해결하는 지도력을 보이지 못하면 암초에 부닥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같은 진단은 달리 말하면 김일성 사망에 따른 권력공백기가 자칫하면 북한체제 붕괴로 이어질지 모른다고 우려해 북한 지도부가 김정일을 중심으로 일단 단결의 모습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는 걸 뜻한다.
그러나 김정일은 현지도집단의 후원속에 북한이 안고 있는 제반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야 하는데 주민들의 기대와 불만이 동시에 터져나올수 있기 때문에 「위기정국」관리가 쉽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의 정책노선은 전반적으로 김주석의 「우리식 사회주의」노선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이 노선은 김일성의 주체사상에 입각한 것인데 노선정립과정에 이미 김비서가 깊숙이 관여했기 때문에 획기적인 정책전환은 어려울 것이다.
김일성 사망 이전의 정책방향도 기본적으로는 김비서의 「작품」이고 김주석은 아들에게 주요한 국사를 거의 다 넘기고 외교접견·농업현장지도등 활동에 국한시켜왔다는 관측이 많았던 터였다.
그러나 기존노선이 그대로 유지된다 하더라도 심각한 경제난과 대외고립,그리고 외부세계의 격변에 따른 주민들의 사회심리적 동요들을 감안하면 김비서로서도 「변화」에 나서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더군다나 개혁·개방의 압력이 날로 거세지면서 북한도 나진―선봉 자유경제무역지대를 설정해 법적·제도적 정비에 힘쏟으며 대외정책의 중점도 대미관계와 남북관계의 개선쪽으로 나서려는 시점에서 김주석이 사망했기에 개방정책을 더 가속화할 것인지 주목된다.
다만 김비서가 정치안정에 성공하지 못한 상태에선 대외개방에 나서기도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따라서 북한의 권력체제가 안정에 접어들때까지는 외부에서 북한상황을 섣불리 판단해서는 안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동안 「수령(김일성)―당(노동당)―인민대중이 하나의 영생하는 사회정치적 생명체」를 이룬다는 독특한 정치논리에 의해 지도자를 중심으로 똘똘 뭉쳐온 특이한 집단주의를 보여온 북한 사회가 이번에 수령의 죽음으로 받을 충격은 상상을 넘어 설 것이다.
북한 방문객들의 증언에 따르면 주민들이 김일성주석의 죽음을 생각조차 하기 싫어한다고 알려져온 만큼 그들의 정신적 공황(패닉)상태는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다.
북한지도부는 이 정신적 공황상태를 극복하기 위해 김정일을 「수령」으로 내세워 전사회를 그들이 즐겨쓰는 구호대로 「일심단결」에 나설 것이 틀림없다.만일 북한사회가 이같은 단결에 실패하여 분열에 빠진다면 「앞으로 공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극히 불안한 사태가 벌어질수도 있다.
우리 정부를 비롯해 주변국가들이 북한사회의 동향에 한시도 눈을 뗄수 없게 된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북한지도부는 17일 김일성의 장례식이 원만하게 끝나면 곧바로 노동당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열어 김비서를 당총비서·중앙군사위원장으로 선출하고 이어서 최고인민회의를 긴급소집해 국가주석으로 선출할 것으로 예상된다.
김정일은 국가주석이 되자마자 남북정상회담을 다시 추진할 가능성이 크다.이것은 그가 남북관계에서 돌파구를 찾아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새 정권의 권위를 부여받으려고 할 것이라는 전망과 관련된다.
사실 북한은 김주석 사망 이전에 이미 핵카드를 통해 대미수교까지 이루려는 「일괄타결」에 집착을 보였고 25일의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려는 구상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번에 김주석의 사망으로 모든 대외정책 일정에 차질을 빚게 됐지만 대외정책의 기조는 그대로 유지될 것으로 예상된다.
어쩌면 김정일이 안팎의 위기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남북관계에 더욱 적극적으로 나올수도 있다.
그러나 북한지도부가 자칫 남북관계 개선을 서두르다 자충수를 둘수도 있다고 판단해 체제안정을 충분히 꾀한 후 어느정도 자신감이 생길때 남북관계를 비롯한 대외관계에 다시 적극적으로 나올것이란 전망도 있다.
현재 북한은 그야말로 「불확실성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고 그만큼 우리와 주변국가들은 마음졸이며 「안개정국」을 지켜보고 있다.〈유영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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