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남북정상선언] 임동원 "대단히 실무적…성과 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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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본사 회의실에서 남북문제 전문가들이 만났다. 임동원 이사장, 현인택 교수, 김영희 대기자(오른쪽부터). [사진=박종근 기자]

노무현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4일 '2007 남북정상선언'에 합의했다. 10개 항으로 이뤄진 이 선언은 7년 만에 다시 열린 남북 정상회담의 성과물이다. 중앙일보는 김영희 대기자의 사회로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이 선언의 의미와 영향을 진단해 봤다.

▶사회=선언에 대한 인상을 말해 달라.

▶임동원=노 대통령이 출발 인사에서 "차분하고 실용적인 회담이 되도록 하겠다. 1차 정상회담이 남북관계의 새 길을 열었다면 이번 회담에선 길에 가려 놓여 있는 장애물을 제거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대로 대단히 실무적인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회담이 잘됐다.

▶현인택=남북 정상은 언제 어디서든 만날 수 있다. 또 노 대통령의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에서 이뤄진 남북 정상회담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합의된 내용 가운데 노 대통령 임기 내에 할 수 없는 것이 포함돼 있다. 한계를 안고 진행된 남북 정상회담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사회=임 이사장께 묻겠다. 선언문엔 전문과 1항에 '6.15 남북 공동선언'에 대한 언급이 네 차례나 나온다.

▶임=6.15 선언은 반세기간 이어져온 남북 불신과 대결을 화해와 협력으로 전환시킨 선언이었다. 구체적인 실천 과제보다 방향을 제시한 선언이었다. 따라서 이번 합의는 6.15 선언의 큰 울타리 안에서 장애물을 제거하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제시한 것이라고 본다. 6.15 선언에 기초해 남북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합의다.

▶사회=중요한 내용은 3, 4, 5항에 집중됐다. 3항의 핵심은 불가침 의무 준수, 군사적 긴장완화, 국방장관 회담 11월 개최 등 세 가지다. 4항의 중요 내용은 정전체제 종식과 항구적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정상회담을 한반도에서 연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내용도 불가침에 관한 것이라 3항과 4항의 구분이 명확하지 못하다.

▶임=1항은 6.15 선언을 재확인하는 것이고 2항과 3항은 남북 기본합의서 중 몇 가지를 강조한 것으로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풀었다는 점이 새롭다. 그간 남북관계에 걸림돌이 돼온 것이 NLL 문제였다.

▶사회=NLL 문제가 3항으로 풀렸나.

▶임=3항과 5항을 통해 풀었다. 이 중 5항이 핵심이고 이를 군사적으로 보장해준 것이 3항이다. 두 항목에 공동 어로수역을 만들고, 해주 직항로를 허가하고, 한강 하구 공동개발을 한다는 내용을 넣어 "NLL을 변경한다"고 하지 않고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사회=NLL에 대한 언급도 없이 문제를 풀었다는 것인가.

▶임=그렇다. 또 NLL 문제로 촉발된 남북한 긴장관계 때문에 철도 운행도 안 되고 있었는데 이번에 운행에 합의했다. 철도가 개성 전 정거장인 봉동까지 운행되면 개성공단 사업이 활성화된다. 그간 경협과 관련해 '제2 개성공단'이 어디일까에 관심 많았지만 사실 개성공단 자체가 2, 3단계로 못 나가고 있었다.

▶사회=다시 NLL로 돌아가 보자. 공동 어로수역을 설정하고 평화수역을 만들면 문제가 해소된다고 생각하나.

▶임=해소된다고 볼 수만은 없다. 그러나 해결의 실마리를 여기서부터 찾지 않으면 대안이 없다. 남북 기본합의서에서 '해상 경계선이 아니다'라는 데만 합의해 놓고 20년 동안 예민한 문제라 해결하지 못했다. 이번 합의처럼 단계적 접근 말고는 다른 도리가 없다.

▶현=NLL을 남북 모두가 인정하되 다만 이후 협의해 나간다는 게 남북 기본합의서의 내용 아니었나. 그렇다면 그것은 현재를 지킨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아닌가.

▶임=이 문제가 예민해 사람들이 말하기를 꺼리는데 기본적으로 NLL은 정전협정에서 명시된 해상 경계선이 아니라는 점이다. NLL은 유엔군이 우리 군사력이 북으로 올라가는 것을 막기 위한 한계선이었다. 그래서 다시 협의하자는 것이었는데 해결이 안 돼 온 것이다. 3항과 관련해 군사적 신뢰 구축을 위해 국방장관 회담을 연다고 했으니 (NLL 문제도) 회담 의제에 다 포함되는 것이다. 정상 간 의제는 아니다.

▶사회=국방장관 회담에서 평화수역과 NLL 문제를 실질적으로 다룰 것이란 뜻인가.

▶임=그렇다.

▶사회=3자 또는 4자 정상이 만나 종전 선언을 하는 것을 협의한다는 내용은 지난해 11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노 대통령에게 던진 것이다. '3자 또는 4자'라는 표현이 선언에 등장한 것은 흥미롭다.

▶임=미국 측에서 3자를 얘기한 적이 있기에 들어간 것 같다. 실제적으로는 중국을 포함해 4자가 돼야 한다.

▶사회=핵 문제로 넘어가자. 김 위원장의 언급이 있었어야 한다는 기대가 있었다. 그런데 선언문을 보면 미흡하다.

▶현=당초 가장 큰 기대를 했던 부분이 핵 문제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비핵화를 언급하고, 두 정상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토론하기를 기대했다. 두 정상이 얼마나 북핵 문제에 대해 대화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선언문을 보면 4항에 '6자회담의 합의가 이행되도록 공동 노력한다'는 한 줄만 들어가 있다. 이건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설명이지 북한의 비핵화(이행)에 대한 내용이 아니다. 이런 점이 미흡하다.

▶임=두 정상 간에 진지한 토의가 있었기에 이런 결론이 나왔다고 본다. 두 정상이 얘기를 많이 했을 것이다. 이번 선언문엔 김 위원장이 핵 폐기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밝히든가 남북 정상이 해결 프로세스에 합의하는 정도밖에 들어갈 수가 없었다. 이 중 후자가 들어간 것이다. 이 정도도 상당한 진전이다.

▶사회=논의는 충분히 했지만 선언문엔 이 정도만 담았다는 얘기인 것 같다.

▶현=선언문의 내용이나 언급 순서 등으로 봤을 때 당초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임기를 몇 개월 남겨두지 않은 대통령이 북한으로 가서 7년 만의 정상회담을 하겠다고 했을 때 국민은 김 위원장이 완전한 핵 폐기로 가는 과정과 관련된 확고한 의지를 표명할 것으로 기대했다.

▶사회=선언문에는 포함 안 됐지만, 김 위원장이 핵 폐기에 대한 강력한 언질을 줬을 수도 있다고 보나.

▶임=그렇다. 다만 핵 폐기는 북.미관계 정상화와 병행해야 하기 때문에 표현은 안 됐다고 본다.

▶사회=서해 평화협력지대 설치에 몇 십조원이 들지 모르는데 노 대통령의 임기는 몇 개월 안 남았다. 실현 가능성을 어떻게 보나.

▶현=투자 개념이라면 결국 민간 자본이 들어가야 할 문제다. 이렇게 되려면 평화 조성이 필요하고 핵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 남북 신뢰 구축도 돼야 한다. 그런 여건만 만들어지면 이런 프로젝트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문제는 현 정부의 임기가 마무리되어 가고 있고, 차기 정권에서 실현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북한은 보다 적극적으로 핵 문제를 해결하고 재래식 군사무기도 축소해야 할 것이다.

▶사회=이명박 후보의 비핵 개방 3000과 이 구상을 비교하면 어떤가.

=이 후보의 비핵 개방 3000에는 두 가지 기준이 있다. 그중 하나가 비핵화 원칙이다. 한반도 평화를 위해서는 북한의 비핵화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정신의 표현이다.

▶사회=이명박 후보가 당선돼 정권이 교체된다면 서해 평화협력 특별지대 합의 내용은 어떻게 되나. 대폭 수정되거나 폐기될 수 있나.

▶현=그 문제엔 국민적 합의가 있어야 하겠다. 현 정부가 합의했다고 해도 그것이 (차기 정부에서) 국민적 합의에 바탕하지 않고 국민의 뜻을 거스른다면 힘들게 될 것이다.

▶사회=경협과 관련해 국민적 합의를 얻을 수 있을 만큼 균형이 잡혀 있다고 보나.

▶현=경협 문제는 남북 평화와 관련돼 있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비핵화가 이뤄져야 한다. 세 가지가 다 이어져 있다. 이 때문에 김 위원장이 비핵화에 대해 한 차원 높은 수준의 의지 표명을 했더라면 균형을 맞출 수 있었을 것이다. 또 납북자나 국군포로 문제도 해결됐더라면 국민도 성공적인 회담으로 봤을 텐데 아쉽다.

▶임=경제적 측면에서는 균형이 대체적으로 잘 잡혀 있다고 본다. 현재 하고 있는 경협을 더 발전시키고, 열악한 북한의 사회기반시설에 투자하고, 장기적으로 남북 경제협력체를 형성해 나갈 때가 됐는데 이를 준비하자는 내용이 다 얘기됐다. 평화문제와 관련해서도 군사적 신뢰 구축, 군비 통제, 평화체제 협상 등 우리가 주도해야 하는 문제가 모두 들어가 있다.

▶사회=선언문에 따르면 다음달에 총리회담이 열리고 국방장관 회담도 열린다. 12월 19일인 대선에 '북풍'은 불지 않겠나.

▶임=대선에 이용하려 해선 안 된다. 우리 국민이 슬기롭기 때문에 1차 남북 정상회담 발표 때도 며칠 뒤에 있은 총선에는 영향이 없었다. 따라서 이번에도 영향은 없을 것이다.

▶현=영향을 얼마나 줄지는 모르겠지만, 북한 문제가 정치적으로 이용돼선 안 된다는 생각에 공감한다.

▶사회=회담이 한 차례 연기된 뒤 열렸고, 일정도 여러 차례 바뀌었다. 또 김 위원장은 환영 행사 때 표정이 굳어 있었고, 노 대통령과 아리랑 공연도 관람하지 않았다. 이상하지 않나.

▶현=예측 가능했던 일이다. 우리의 희망 사항만 알려졌지 내부적으로 어떻게 합의됐는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실제로 장소가 몇 번 변경됐는지, 무슨 기념 헌장탑 같은 데서 하는 것이 합의됐는지 의문이다. 그러니 진짜로 일정이 바뀐 것인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김 위원장의 이동 경로는 비공개이기 때문에 일정 예측은 돼도 공개는 안 되는 것 아닌가.

▶임=노 대통령이 3일 수행원들과의 오찬에서 북한이 개혁.개방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는 얘기를 하지 않았나. 그런 일정 변경 같은 일이 그런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고 본다.

▶사회=오랜 시간 토론에 감사드린다.

정리=남궁욱 기자 , 사진=박종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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