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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시민사회 변하고 있다(上)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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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호주 시드니 해변의 백사장.
빨간 모자를 쓰고 망대에 높이 앉은 한 청년이 수면위를 바라본다. 해수욕장을 가득 메운 수영객들이 물장구를 치며 마냥 즐거운 탄성을 질러도 청년의 눈길은 흔들림이 없다.
한사람 한사람 수영객의 행동을 주의깊게 관찰할 뿐이다.
이른바 수상안전요원-.
그러나 그 청년은 호주에서 가장 인기있는「수상인명구조운동」(The Life Save Movement of Australia)소속 대학생 자원봉사자다.
일체의 보수를 받지않는 학생이다.단지 6만6천명 자원봉사 회원중 한명으로 뽑혔다는 기쁨에 무더위도 아랑곳없이 이 일을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美國 서부 댈러스市에 있는 에니타 앤 마티니스 레크리에이션 센터. 저소득층이 몰려사는 빈민지역의 이 센터에 15명의 히스패닉 주부들이 어린 멕시코 혈통 청소년들에게 영어를 가르치 고캠프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73년 이 지역 시의원 이름을 따 지은 이 센터의 자원봉사자들은 모두 주부.이들은 앞치마를 두르고 가난한 주민들에게 무료급식을 하고,알뜰시장을 개설한다.
자원봉사자(볼런티어)-.
이제 세계는 21세기 미래를 그들에게 맡기고 있다.
더이상 국가만이 아니다.
지난 인류의 꿈은 복지국가였다.
산업화와 더불어 시작된 근대국가의 출현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보완을 위해 국가의 확대된 사회정책을 요구했다.
노후소득.질병.실업.장애.빈곤등 사회복지 영역을 비롯해 시민생활의 모든 면을 국가에 책임지우려했던 것이다.
20세기들어 그 복지국가는「요람에서 무덤까지」로 상징되는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낳았다.
그러나 세계는 변하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변화는 70년대부터두드러지기 시작했다.
학자들은 이를「新보수주의」로 표현한다.그러나 그 물결의 새로운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히 깨닫는 사람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것은 단순히 사회복지 영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환경.범죄.의료.정치.인권.소비자등 모든 영역,모든 사회에 걸쳐 일어나는 새물결이었다.그것은 단순히 과거의 지역사회 운동이 아니고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이 말하는 민주정치의「제3의 물결」만도 아니다.그것은 정치와 경제를 넘어 인류 모두가 자발적으로 나서「손에손을 잡는」새로운 시민사회(Civ il Society)의 건설운동이다.
바로 우리 주민,시민단체들이 나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불우이웃을 돕고 마약.섹스.범죄.환경오염등으로 얼룩진 사회를 맑게하는사회정화에 모두 나서자는 것이다.
그리하여 점점 멀어져가는 이웃관계를 회복하고 사회공동체를 다시 일으켜보자는 운동이다.
이른바「제3섹터」의 등장으로 불리는 이 물결은 유럽.미국등 구미 선진국에서,아시아에서,아프리카.중동에서 인종과 체제와 이념을 넘어 오늘날 전세계로 뻗어가고 있다.
완벽한 사회보장제도를 자랑하는 영국에서 시민들이 운영하고 있는 자선봉사단체는 모두 27만5천여개.그리고 80년부터 불과 6년간 그들 자선단체들의 모금 수입은 두배이상 늘었다.오늘날 그들의 모금수입은 英國 국민총생산(GNP)의 4% 를 넘는다.
오랫동안 사회당이 집권해 온 프랑스 역시 마찬가지다.87년 한햇동안 프랑스에서는 5만4천여개의 새로운 시민단체가 조직됐다. 이는 60년대의 경우 1년에 1만~1만2천개씩 조직됐던데 비해 무려 다섯배가 늘어난 성장속도다.89년과 90년엔 전유럽공동체내의 자원봉사조직을 대표하는 유럽민간협의회(CEDAG).
유럽시민행동봉사협회(ECAS)등 몇개의 민간 연합 체들이 결성됐다. 놀랄만한 성장은 아시아.아프리카.라틴아메리카의 개발도상국들에서 진행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70년대 우리나라의 새마을운동과 같은 정부.
민간 합동의 지역사회 개발운동이 한창이다.
방글라데시에서는 1만여개의 비정부조직체(NGOs)가 각급 정부기관들에 등록돼 활동하고 있다.
필리핀에서는 70년대와 80년대에 2만1천개의 비정부단체가 조직돼 자원봉사자 훈련.조사등을 펴고 있다.
브라질에서는 사회참여 그룹이 주축이 된「국민의 교회」가 전국에 8만~10만개 지부를 형성했다.
그 물결은 러시아.폴란드.헝가리등 최근 공산주의가 무너진 동구권 국가들에도 밀려 들어가고 있다.
92년 현재 폴란드에는 수천개의 민간 재단이 등록돼 있고 헝가리 역시 6천여개의 재단,1만1천여개의 민간협회가 등록돼 활동을 펴고 있다.
71년에 창설된 유엔자원봉사단(UNV)은 유엔개발계획(UNDP)의 운영아래 오늘도 전문 직업인들을 자원봉사자로 전세계에 파견한다.
92년도 현재 2천61명이 1백16개국에서 봉사하고 있다.주로 개발도상국 출신인 그들은 유엔이 제공하는 최저생활비만을 받고 아시아.아프리카등지의 빈곤지역에 나가 빈곤퇴치.환경개선.구호.재활등의 활동을 벌인다.그들중엔 석사 이상의 학위 소지자가절반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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