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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ek&] 10만 개 불상의 장엄 퍼레이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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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천무후의 얼굴을 한 룽먼 석굴대불(가운데 석불) 앞에선 관광객들이 콩알만 하다.

‘허상’이 중국을 강타한 적이 있다. 1988년이다. 진원지는 관영 CCTV 프로그램. ‘황허의 죽음’을 뜻하는 ‘허상’은 중국의 뿌리 깊은 우상을 공격했다. 세계를 호령하는 중화민족을 위해 만리장성은 낡은 장애물일 뿐이라는 내용이다. 문명의 진원지 황허도 공격을 피하지 못했다. 유럽이 바다를 건널 때 중국인들은 진흙탕 강 황허에서 노를 젓고 있었다는 거다. 지독한 관료주의에 빠져, 역사의 뒤로만 숨던 중국의 절절한 자기 반성이다. 그 뒤 1년, 천안문 사태가 터졌다. ‘허상 쇼크’ 20년 뒤의 황허를 찾았다. 하류에 있는 중원의 고도 허난(河南)성이다. 공항을 나서자 잘 뚫린 고속도로가 눈에 들어온다. 도로 양쪽엔 온통 폐가들이다. 6·25 직후 우리네 모습이다. 허난성의 첫인상은 여전히 ‘허상’이었다.

<중국 허난성> 글·사진=이진수 기자

 손톱만 한 부처에서 17m짜리 부처까지

윈타이산 붉은 협곡 경치는 장가계보다 한 수 위다.

 당 태종 말년 때다. 오늘내일 하는 태종을 태자(훗날 고종)가 병문안 갔다. 한 여인이 아버지 옆에서 병구완하고 있었다. 그녀의 미모에 태자는 눈을 떼지 못했다. 그녀가 측천무후다. 고종 첩들의 몸뚱이를 잘라 술항아리에 넣었던 잔혹한 여인. 당나라를 접수하고 16년간 여제에 올랐던 여인. 그녀의 얼굴이 룽먼석굴에 있단다.

 뤄양(洛陽) 시내에서 남쪽으로 약 15km 가다보면 큰 강이 있다. 황허 지류인 이허(伊河)인데 이 강을 따라 절벽에 10만 개의 불상이 새겨져 있다. 높이 2cm 부처에서 17m 대불까지 2300여 개 석굴에 조각되어 있다.

 대불이 단연 눈에 띈다. 통통한 볼, 예쁜 눈매, 지그시 감은 눈…. 주변을 압도하는 크기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저 자비로운 불상이 측천무후라곤 상상조차 힘들다.

 당시 측천무후는 대불만큼은 자신의 얼굴을 닮게 만들라고 지시했단다. 표정은 온화한데 훼손이 심했다. 대불을 옹위하는 금강역사상은 머리가 잘려나갔다. 도굴 탓도 있지만 문화혁명 때 홍위병들이 많이 파괴했다. 천하를 호령하던 여제였지만 말년은 비참했다. 과거청산이란 명분으로 역사를 파괴해버린 그 천박한 인식은 더 비참하다. 입장료 80위안.

소림사와 70여 개 무술학원

 그 시절 청소년들의 친구는 쌍절봉이었다. ‘아뵤!’ 외마디가 풍미한 70·80년대. 우리도 그랬는데 중국은 어땠겠나. 그래서일까? 소림사 근처 70여개의 무술학원이 눈에 먼저 들어왔다. 여기의 한 학기(6개월) 등록금은 우리나라 돈으로 최고 100만원. 매년 6만 명이 연예인·경호원을 꿈꾸며 덩펑(登封)시로 몰린다. 무술학원이 초등교육기관이라면 소림사는 중등교육기관이다. 학원서 잘나가는 아이들이 소림사로 진학하는 셈이다.

 소림사에 들어가면 거대한 맷돌이 있다. 장정 20명이 달라붙어도 꿈쩍 않는 맷돌이다. 그 맷돌을 고승 8명이 돌렸다 한다. 소림사를 둘러본 뒤 무술 공연을 관람했다.
 그런데 재미있다. 소림사 방장이 소림사 내 공연을 꺼린다고 한단다. 세속화되는 소림 정통을 지키기 위해? 천만에다. 해외공연이 더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최근에 새로운 상설 공연이 생겼다. 산쭝샤오린인웨다뎬(禪宗少林音樂大典). 산과 계곡을 통째로 빛과 소리의 무대로 꾸몄다. 총감독은 영화 와호장룡·영웅에서 음악을 담당했던 탄뒨이 맡았다. 계곡 위에 달을 만든 스케일이 놀랍다. VIP석 980위안, 1등석 428위안, A구역 248위안, B구역 198위안, C구역 168위안, 아동은 85위안.

장가계보다 황홀한 윈타이산

 정저우(鄭州)에서 북쪽으로 90km를 가면 자오쭤(蕉作)시 부근에 윈타이산(雲臺山)이 있다. 중국이 지정한 10대 명산 중 3위다. 국내에 잘 알려진 장가계는 8위다. 11개 코스 중 10개가 개방됐다. 그중 훙스샤(紅石峽), 취안푸샤(泉瀑峽), 탄푸샤가 유명하다. 훙스샤는 말 그대로 붉은 협곡이다. 바위 속 철분 때문이다. 갈라진 절벽 사이로 이어진 협곡 2km는 아찔하고 황홀하다. 길고 긴 구름다리를 몇 번 건너다보면 거대한 폭포에 다다른다. 윈타이산은 한번에 모든 걸 보여주지 않았다. 협곡의 장대함은 들켰지만 폭포의 웅장함은 감췄다. 장마철이 지나야 폭포의 유량이 많아지고 거세진다. 사계절을 다 봐야 이 산의 참맛을 알 수 있단다. 입장료 150위안(버스 탑승료 30위안 포함).  

TIP

대한항공이 최근 정저우 직항 노선을 취항했다. 상하이나 베이징을 통하던 수고를 덜게 됐다. 주 4회(월·수·금·토) 운항하며 2시간30분 걸린다. 정저우와 한국의 시차는 1시간. 환율은 1위안에 약 130원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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