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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가 있는 아침] '고드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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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김진수(1956~) '고드름' 전문

인절미 한 조각 들고
창문을 여니
밖으로 흰 고물이 날린다
떡고물 흐릿한 사이
솔기 삯바느질하는 어머니의 손길이
하늘 깃 풀어 누비옷을 짓는다
나무에도 걸어주고 금옥이네
지붕에도 덮어주고
고샅길 싸리울마다 입혀주면은
소복, 사립 켠 고향집 마당이
불빛에 따뜻하다 발자욱도 없이
어머니의 한숨 같은 입김이
굴뚝 위에 피어 오르고
조막만한 아이들의 영창으로
죄인처럼 길게 고드름이 내린다



고드름은 거꾸로 자란다. 세상에서 태양의 반대편으로 성장을 해나가는 것은 아마도 나무뿌리와 고드름뿐일 것이다. 뿌리가 깊은 나무는 오래 선다. 뿌리가 깊은 고드름이 진짜 겨울을 빚는다…. 어린 시절 고드름으로 칼싸움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 초가지붕을 타고 내려온 고드름을 꺾어 조무래기들이 모여 전쟁놀이를 하는 것이다. 부딪치면 금세 깨지고 부러지는 얼음칼의 성질 탓에 이 칼싸움의 시간은 의외로 길었다. 부딪는 흉내만 내고 진검은 서로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다가 얼음칼이 부러지면 함께 모여 아이스크림인 듯 동강난 고드름을 빨기도 했다. 나무뿌리가 생의 근원이라면 고드름은 겨울의 근원이다.

곽재구<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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