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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우석 칼럼] 경제부총리 고르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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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경제부총리가 총선에 나가기 위해 사임한다면 후임은 어떤 사람이 좋을까.

가장 먼저 운이 좋은 사람이어야 한다. 운이 좋다는 것은 로또 당첨과 같은 요행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해온 일이 잘 풀렸다는 뜻이다. 경영자 중에도 운좋은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맡기만 하면 실적이 좋아진다. 호황 사이클을 탈 수도 있지만 늘 그럴 수는 없다. 운이란 것은 만들 수도 있는 것이다. 일이 번번이 잘 되려면 여러 사람의 도움을 잘 받고 팀플레이를 잘 해야 한다. 여러 사람이 즐거이 도움을 주게끔 평소 덕을 쌓았거나 수용 태세가 좋아야 하는 것이다. 하다못해 조상님들의 음덕이라도 있어야 한다. 책임있는 자리를 맡아본 경험이 있고 그때마다 일이 잘 풀린 행운아가 좋겠다.

*** 비상 타개책 필요한 경제 전략

실제 러.일 전쟁 때 일본은 러시아의 발트 함대에 맞설 연합함대 사령관을 고르면서 운좋은 사람이 누구인가를 찾았다 한다. 그래서 서열도 한참 아래고 퇴역 직전에 있던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제독이 발탁됐다. 나라의 명운이 걸린 건곤일척의 싸움이니 파격적 인사를 한 것이다. 과연 도고 제독은 밑의 참모들을 잘 써 좋은 의견과 최종결단을 끌어내고 과감히 진두지휘에 나서 동해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때 일본은 런던국제자본의 지원과 당시 최강을 자랑하던 영국 해군의 협조를 얻는 고차원적 전략도 썼다. 한국경제도 지금 건곤일척의 벼랑에 서 있다. 비상한 타개책이 필요하다. 높은 국가전략과 아울러 운좋은 경제팀장이 긴요한 것이다. 운좋은 사람은 인상이 좋다. 열심히 베풀면서 또 이루며 살았기 때문에 그것이 겉으로 나타나게 돼있다. 척 보아 신뢰가 가고 안심할 수 있는 모습이 적격이다.

둘째는 용량이 넉넉한 사람이어야 한다. 요즘 경제사정은 너무 복잡하다. 경제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다른 문제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수비 범위도 국제적이다. 그런 것들을 매끄럽게 처리하려면 서로의 인과관계나 파급영향을 알 수 있어야 한다. 임명권자는 말할 것도 없고 관계부처나 이해관계자를 잘 설득해야 한다. 지금 시급히 처리해야 할 현안도 많고 미리 막아야 할 것도 많다. 일이 터졌을 땐 이미 늦다. 경제의 흐름을 피부로 느끼고 직관적으로 판단이 서야 미리 손을 쓸 수가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의욕이나 사명감보다 용량이 커야 된다. 컴퓨터도 용량이 초과되면 버그가 나듯이 부총리도 마찬가지다. 단지 잘 안 보일 뿐이다. 요즘 경제가 침체돼 있으니 분위기를 일으킬 수 있는 낙관적인 사람, 또 금융이나 산업 문제 등 미시경제도 볼 줄 알면 더 좋다. 스스로 잘 모르더라도 그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전문가의 말을 경청할 자세만 돼 있으면 된다. 소신에 찬 필마단기형이나 아마추어는 매우 위험하다. 용량에 여유가 있으면 늘 바쁘고 긴장된 모습이 아니라 여유있고 푸근한 모습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경이 좀 둔한 사람이어야 한다. 새 경제팀장은 온갖 압력에 시달려야 할 것이다. 총선을 앞두고 얼마나 많은 요청이 들어오겠는가. 그걸 다 들어주다가는 경제를 살리기는커녕 더 어렵게 할 것이다. 아주 무관심할 수는 없지만 그것도 오차범위 안이어야 한다. 적어도 경제의 근간을 흔드는 것, 앞으로 큰 부담이 될 것은 막아야 한다.

*** 소신 앞세운 아마추어는 위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상황에 일희일비하면 위험하다. 신경이 예민하고 머리회전이 빠르면 그렇게 하기가 힘들다. 여당이나 출마한 전임자, 심지어는 임명권자의 요청도 더러는 조절할 수 있으려면 신경이 둔해야 한다. 선거판의 열기 때문에 무리를 하면 그 부담은 두고두고 져야 하기 때문에 정부.여당도 언젠가는 부총리의 둔감함에 감사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까. 마음을 열고 잘 찾으면 없을 턱이 없다. 사람이 없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여는 것이 문제다. 또 잘 찾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쓰는 것은 더 중요하다. 도고 제독도 처음엔 의구가 있었지만 전적으로 믿고 맡겨 소신껏 일하도록 뒷받침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성공한 인사가 됐던 것이다.

최우석 삼성경제연구소 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