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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네 터치] 비평이 껄끄러운 '헐레벌떡 시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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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기 휘날리며'는 대체 언제쯤 시사회를 엽니까?"

한국 영화 초유의 제작비(총제작비 1백90억원)를 들인 전쟁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 관계자들이 최근 기자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이다. 시사회는 대개 늦어도 개봉 열흘 전에는 열린다. 그래야 소개 및 비평 기사가 게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태극기…'의 시사회는 개봉을 겨우 이틀 앞둔 3일이다. "편집이 늦어졌기 때문"이란다. 강제규 감독은 9개월이나 걸린 촬영 기간 중 필름을 35만자나 썼다. 보통 영화의 4~5배에 해당하는 분량이니 편집이 많은 시간을 잡아먹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개봉 이틀 전이라니,언론 상대의 시사회라는 취지가 무색한 감이 있다.

최근 들어 이렇듯 시사회 일정이 빠듯한 사례가 잦다. 지난해 12월 17일 개봉한 '반지의 제왕3-왕의 귀환'은 일주일 전에야 시사를 했다. 이쯤은 양반이다. '매트릭스3:레볼루션'은 11월 5일 개봉인데 하루 전에야 영화를 공개했다. 사전 소개(프리뷰) 기사를 아예 쓰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다.

'헐레벌떡 시사회'의 이유도 여러 가지다. 지난해 말 한 로맨틱 코미디는 예정된 시사회 당일 새벽, 기자들에게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로 '연기됐음'을 급박하게 알리기도 했다. 이런 경우는 오해를 사기 쉽다. 뒤늦게 영화의 '함량'이 떨어진 것을 알고 언론 공개를 최대한 늦춰 영화에 대한 악평이 관객에게 전달되는 기회를 줄여보려는 의도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 영화 역시 "기술상 중대한 결함 때문"이라고 했지만 개봉 후 이런 오해가 오해가 아니었음이 밝혀졌다.

일부 할리우드 영화는 아예 본사에서 시사회를 가급적 늦게 하라는 지침이 오기도 한다. '반지의 제왕3'이나 '매트릭스3'같은 시리즈의 완결편에 그런 예가 많다.'굳이 언론 보도에 기대지 않아도 올 사람은 다 온다"는 식의 배짱(?)이 작용한 것이다.

이런 경향은 최근 영화에서 마케팅의 비중이 커짐에 따라 더 심해지는 것 같다. 한국 영화의 경우 '배보다 배꼽이 큰'경우도 있다. 제작비의 절반 이상을 마케팅에 쏟는 것이다. 지난 10년간 한국영화의 제작비는 세배가 뛰었지만, 같은 기간 마케팅 비용은 11배가 증가했을 정도다. 이벤트나 TV광고 등에 10억~20억원 정도 쓰는 건 기본이다. 할리우드산 대작 영화도 평균 15억원을 마케팅에 쏟아 붓는다. '헐레벌떡 시사회'가 많아진다는 건 그만큼 관객이 옥석(玉石)을 가려낸 언론의 객관적 평가보다는 영화사의 일방적 홍보에 노출될 가능성이 커진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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