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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맘마미아'…우리말 개사 호평받은 한진섭 감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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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뜻밖이다. 뮤지컬 ‘맘마미아’는 8개 프로덕션과 3개의 투어팀이 지구촌 곳곳에서 1주일에 무려 8백만 달러를 벌어들이고 있다. 지금껏 ‘맘마미아’를 본 관객만 1천만명이 넘는다. 그런데 정작 ‘아바’의 고향인 스웨덴에선 아직 막이 오르지 않았다.

지난달 24일 한국을 찾은 아바의 멤버 비욘 울베이우스는 “스웨덴에선 2005년에나 ‘맘마미아’가 공연될 것”이라며 “모국어라 솔직히 스웨덴어 개사 작업이 두렵다”고 밝혔다. 직접 노래를 만든 아바조차 영어 가사를 바꾸는 일이 쉽지 않다고 했다.

그런 두려움이 국내에선 통하지 않았다. 지난달 25일 예술의전당에서 막이 오른 '맘마미아'의 우리말 가사는 전문가들로부터 "아바의 노래맛을 80% 이상 되살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주인공은 한진섭(47) 감독.

*** 자다가도 일어나 작업

"'맘마미아(Mamma Mia)!'가 무슨 뜻인지 아세요?" 1일 예술의전당 연습실에서 만난 한감독의 첫마디였다. "'맘마미아'는 이탈리아어로 '맙소사!''어머나!'란 뜻이죠." 그런데 그는 '맘마미아'를 '어머나!'가 아닌 '어쩜 좋아!'로 바꾸었다. 이 한마디에는 의미와 음절, 어감을 놓고 1년 이상 지새운 숱한 밤이 배어 있다.

2002년 8월, 한감독은 영국 제작팀으로부터 "'맘마미아'를 한국어 가사로 바꾸지 않겠느냐"는 제의를 받았다. 학창 시절, 아바는 그의 우상이었다. "우상의 노래에 칼을 대다니 처음엔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결국 도전해보기로 결심했다.

영국 제작팀은 까다로웠다. "뮤지컬의 대표곡인 '댄싱퀸'과 '치키티타'를 먼저 개사해보라"고 요청했다. 실력을 보겠다는 뜻이었다. 받침이 없는 일본어 공연에서 낭패감을 맛봤던 영국 제작팀으로선 당연한 요구였다. 한감독은 불과 2주 만에 우리말 가사를 노래에 실어 내밀었다. 결과는 '합격'이었다. 의미까지 꼼꼼히 따지던 영국팀은 "어감이 매우 아름답다"며 작업을 맡겼다.

이 때부터 한감독은 아바의 노래에 파묻혀 살았다. 잠을 자도, 눈을 떠도, 밥을 먹다가도 아바의 노랫말이 귓가를 맴돌았다. 그러나 영어가 문제였다. 오디션 때와 달리 본작업에선 원곡의 메시지를 완벽하게 되살려야 했다. 한감독은 "솔직히 영어는 잘 모른다"고 털어 놓았다. 대신 외국에서 살다온 친구에게 묻고 또 물었다.

*** "이젠 아바 내면도 알아"

본작업은 더했다. 영국 제작팀이 "콩나물 음표 하나에 딱 한음절의 한국어만 사용해야 한다. 음표를 쪼개지 말아달라"는 엄격한 조건을 내걸었기 때문이다. '원곡을 훼손할 수도 있다'는 판단이었다. 한감독은 "원곡에선 한 음절로 통하는 '러브(럽.LOVE)'가 '사랑'으로 풀어내면 두 음절이 되고 만다"며 "노랫말이 짧을수록 작업은 지옥 같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감독은 특유의 현장감을 발휘했다. 연극.뮤지컬 배우 출신에다 뮤지컬 '갬블러''풀몬티'등을 연출했던 그는 직접 노래를 불러가며 수도 없이 가사를 고쳤다. 그러나 아무리해도 풀리지 않는 대목이 있었다. 한감독은 "'노잉 유, 노잉 미(Knowing you, knowing me)'란 가사를 잊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딱 여섯자 안에다 '각자의 길로 간다'는 메시지를 담아야 했다.

그는 결국 모든 작업이 끝나갈 무렵, 자다가 새벽에 벌떡 일어나 '너는 너, 나는 나'란 가사를 정신없이 노트에 적었다고 했다. 또 '아이 해브 어 드림, 아윌 크로스 더 스트림(I have a dream, I'll cross the stream)'은 '믿는다면 이뤄지죠'로 바꾸었다. 동화를 믿는 스무살 소피의 내면까지 담아내야 했기 때문이다. 한감독은 "그토록 찾던 노랫말이 떠오를 때의 짜릿한 전율이 아직도 느껴진다"며 "학창 시절에는 아바의 리듬만 알았는데, 작업하면서 아바에 담긴 슬픈 정서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백성호 기자<vangogh@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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