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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영훈 前총재 "남북 이산가족 면회소 마무리 못해 아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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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해 연말 대한적십자사 총재직을 떠난 가온(嘉溫) 서영훈(徐英勳.82.사진)옹은 한국 적십자 운동의 산 증인이다. 50년 동안 한적에 몸담고 있으면서 청소년적십자(RCY) 창설과 헌혈제도 확립, 스승의 날 제정 등 굵직한 업적을 남긴 徐전총재로부터 살아온 궤적을 들었다. [편집자]

徐전총재는 "내가 적십자사 일을 열심히 한 것은 세상이 인정하는 것이고 정말 열심히 했지요"라고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러나 아쉬워하는 분위기도 역력했다. "내년에 서울에서 세계 적십자사 총회가 열리고 금강산에 이산가족 면회소도 곧 짓는데 마무리하고 싶었지요. (총재직 연임 여부를) 지난해 12월 초께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물어봐도, 청와대 비서실장에게 물어봐도 모르겠다고 하더라고요. 연임은 안 되겠구나라고 생각했지요. 며칠 뒤 대통령이 불러 만났습니다.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하다가 이윤구씨 말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그렇게 정했으면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했습니다."

徐전총재의 이력은 화려하다. 대한적십자사 사무총장과 총재, 흥사단 이사장, KBS 사장,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 등을 거쳤고 제2의 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 한국자원봉사협의회 상임공동대표 등 각종 시민단체의 대표직도 두루 맡았다.

그런 徐전총재는 자신을 '반골(反骨)'이라고 표현한다. 徐전총재는 1923년 평안남도 덕천에서 태어났다. 일제 때 협동조합운동을 했던 할아버지가 '일본놈 졸업장을 받지 말라'고 해서 국민학교 졸업장을 받지 않았고 창씨개명도 하지 않았다고 했다. 스무살이 되던 해에는 일본 경찰에 체포돼 9개월여 옥살이도 했다.

해방 후 덕천군 인민위원장이던 친척이 함께 일하자는 것을 거절한 徐전총재는 가족을 남겨 두고 46년 단신 월남했다. 당시 김일성은 가짜라는 소문도 있었고 토지개혁도 과정과 방법에 찬성할 수 없었다.

월남 후 민족청년단 교관, 국방부 문관, 해운공사 직원 등으로 일하던 徐전총재는 6.25가 막바지로 치닫던 53년 3월 한적에 취직했다. "부산에 피란 중이었는데 적십자사에서 청소년 사업을 한다면서 사람을 구했습니다. 고민 좀 했지요. 부산에서 제일 대우가 좋았던 해운공사에 다녔는데 한적은 월급이 절반도 안 되는 데다가 당시는 학도호국단 외의 모든 학생 활동이 금지된 때라 청소년 적십자 활동도 쉽지않겠다는 생각도 있었죠."

한적 청소년국장.청소년부장으로 재직하면서 53년 한국 청소년적십자를 창립하고 64년에는 '스승의 날'을 제정하는 등 정력적으로 일했다. 74년에는 적십자사의 혈액사업을 매혈(賣血)에서 헌혈로 전환시키면서 헌혈운동을 전개해 한적의 중심사업으로 일궈냈다.

72년부터는 남북적십자회담에 참여하기도 했다. 徐전총재는 자신이 회담에서 주역이 아닌 조연이었음을 감추지 않았다. "회담 주역은 중앙정보부였죠. 저는 회담이 끝나면 학교나 단체를 찾아다니며 강연하는 게 주임무였어요. 이북을 흉보고 나쁘다고 해야할 때였지만 북한이 대한민국보다 더 발전했다고 숨김없이 이야기했어요."

徐전총재는 자신이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것을 싫어했다. 한때 고(故) 정주영 현대명예회장과 가까운 사람으로 알려지기도 했지만 국민당에는 끝내 가담하지 않았다. 새천년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이 된 것도 몇 차례 죽을 고비를 넘겨 당선된 김대중 대통령과의 인연을 뿌리치지 못해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80년대 중반 흥사단에서 인연을 맺었던 김대중 대통령이 2000년 초 총선 때까지 몇 달만 도와달라고 하더군요. 정치자금이나 공천에는 관여하지 않고 그저 회의를 주재하고 강연을 하는 조건으로 대표직을 맡았습니다. 주위에선 허수아비라고 했지요."

徐전총재는 앞으로 94년부터 벌여온 공동선(共同善) 운동에 적극 나설 계획이다.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추구함으로써 우리 민족이 세계화 시대에 선진 민족이 되도록 하기 위한 운동이다. 徐전총재는 부인 어귀선 여사와의 사이에 4남1녀를 두고 있다.

글=정용수, 사진=신동연 기자

<서영훈 前총재는>

23년 5월 평남 덕천 출생

72년 남북적십자회담 대표

72~82년 한적 사무총장

88~90년 KBS 사장

96~현재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본부 상임대표

99~2000년 제2의 건국범국민추진위원회 상임위원장

2000년 민주당 대표최고위원

2001~03년 한적 22대 총재

2004년~현재 한적 명예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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