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개항기에서 8.15해방까지 '여성 근현대사' 복원 해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요사이 학생들(이) 치마감.적삼감을 고를 때에 속 잘 들여다 보이는 것 찾느라고 야단이다. 포목전 주인의 걱정하는 말. '개화가 다 되어 벌거벗고 다니게 되면 우리는 무얼 해 먹나'."(1924.신여성)

시 스루(see through.속이 비치는) 스타일에 종아리를 드러낸 미니(?) 스커트. 80년 전 멋쟁이 조선 여성들의 유행 패션이다. 외세의 물결이 한반도를 뒤덮었던 1876년 개항부터 1945년 광복까지 이 땅의 여성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숙명여대 아시아여성연구소(소장 전경옥)가 최근 발간한 세권의 '한국여성근현대사'는 이같은 질문에 대해 눈에 그리듯 생생하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책은 문화사와 정치사회사.인물사 등 세 분야로 나뉘어 출판됐다. 신문.잡지 등을 인용해 재미있게 구성하고 다양한 미발굴 사진.포스터 등도 실었다.

한국여성근현대사의 발간은 기존의 남성중심의 역사(history)에서 소외됐던 여성의 역사(herstory)를 복원해 낸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때문에 새로운 사료를 발굴하는 작업과 동시에 기존의 사료를 재해석하는 작업도 했다. 권마다 4백쪽 안팎으로 구성된 책들은 개항과 일제 식민지가 여성에게도 격동의 시대였음을 보여준다.

가정에 머물던 여성들은 이 시기 학교로, 공장으로 사회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다. 농촌의 빈곤한 집 딸들은 방직 공장 등의 여공으로 돈을 벌어 집안을 도왔다. 1930년 통계에 나타난 여공의 수는 28만여명.

보다 적극적인 사회 참여도 있었다. 근대 교육의 세례를 받은 지식인 여성들은 '근우회' 등의 여성단체를 통해 조선 여성의 단결과 정치적.경제적.사회적 각성을 촉구했다.

성(性)이란 주제는 이 시기 음지에서 양지로 걸어나왔다. '남자의 정조는 놋그릇이요 여자의 정조는 유리 그릇이라. 놋그릇은 떨어뜨려도 찌그러질 뿐 다시 사용 가능하지만, 유리 그릇은 떨어뜨리는 그 날이 마지막 날'이라는 남성의 주장에 신여성들은 "남자에게 유리한 법률과 제도, 생활의 모든 기준이 남자이기 때문"이라고 반박하기도 했다.

숙대는 해방 이후부터 2000년까지 모두 6권의 여성사를 추가로 발간할 계획이다.

문경란 여성전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