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중견기업] "30개 브랜드 명품백 우리가 만듭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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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버리·DKNY·코치·마크 제이콥스…. 핸드백 제조업체 시몬느의 제품을 공급받는 글로벌 명품 브랜드들이다. 이들 회사를 포함해 30가지 명품 메이커가 시몬느의 고객이다. 의류·신발·모자 등을 해외에 납품하는 기업은 숱하다. 하지만 이처럼 전 세계 해외 명품 브랜드만을 주요 고객으로 삼는 경우는 드물다. 박은관(52·사진) 시몬느 회장의 이런 전략은 1980년대 후반 회사 설립 때부터 지금까지 흔들림 없는 경영 원칙이다. 당시만 해도 국내 납품업체들의 ‘상식’은 중저가 제품이었다.

박 회장은 시몬느 설립 전에 ‘청산’이라는 중저가 핸드백 제조업체의 해외 영업 담당으로 뛰며 핸드백과 인연을 맺었다. 그가 독립을 결심한 것은 단순 납품 업체로서의 한계를 절감한 때문이다. ‘청산’ 제품을 납품받는 고객 업체들은 “왜 우리 말고 다른 업체들과 거래하느냐”고 따지기 일쑤였다.

때마침 한 글로벌 명품 브랜드 회사의 고위 인사한테서 “직접 회사를 차려 우리에게 납품하면 어떻겠느냐” 는 제안을 받았다. 그래서 고민 끝에 세운 것이 시몬느다. 시몬느는 박 회장이 부인 오인실씨를 부르는 애칭이다. 10년 넘게 핸드백을 만든 ‘장인’ 열다섯 명과 함께 창업했다. 박 회장은 “청산의 고객과 겹치지 않게 주문을 받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유럽에서 고급 핸드백이 잘되는 걸 보고 ‘바로 이거다’ 싶었다”고 회고했다.

박 회장의 예상은 적중했다. 캘빈 클라인, 도나 카렌 등 의류 브랜드가 액세서리를 포함한 토털 패션업체로 변신을 꾀하기 시작한 것이다. 10년 가까이 해외 영업을 하면서 쌓은 글로벌 인맥도 큰 무기가 됐다. “로즈마리 버버리 회장 등 당시 알고 지내던 실무 담당자들이 지금은 ‘결정권’을 가진 자리에 올랐어요.” 하지만 자존심 세고 까다롭기로 이름난 글로벌 명품 브랜드, 그것도 30곳이나 고객으로 ‘모시는’ 것은 녹록지 않은 일이었다.

박 회장은 “상호 경쟁관계에 있는 명품 브랜드들이지만 납품 과정에서 이해가 상충하는 ‘교통사고’를 낸 적은 없다” 고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제품력, 그리고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브랜드 간의 정보 보안과 독보성을 지켜 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시몬느의 가장 큰 경쟁력은 ‘제조자개발생산(ODM·Original Development Manufacturing)’ 방식에서 나온다. 시몬느가 고객사에 소재와 디자인을 제안하고, 가격 결정에 참여하는 등 제품 개발에 깊이 간여하는 게 특징이다. 이 덕분에 시몬느는 고객사들로부터 ‘납품공장(Factory)’이 아닌 ‘풀 서비스 컴퍼니(Full Service Company)’라 불린다. 명품 의류 브랜드가 아시아에서 핸드백을 출시하기 전에 박 회장의 조언을 먼저 구할 정도다.

시몬느의 제품은 국내외 경쟁 납품업체들보다 대체로 10% 정도 비싸다. 그럼에도 경쟁력을 인정받는 것은 개발에 적극 참여해 장기적으로 인건비를 줄여 주기 때문이다.

박 회장이 힘을 쏟는 분야는 인력 개발이다. 시몬느는 10% 더 받은 돈을 직원 교육에 대부분 투자한다. 또 해외 영업 담당에 국한하지 않고 전 직원을 해외 출장 보낸다. 모든 직원이 해외 시장을 직접 체험할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시장에서 새로운 트렌드를 선도하는 것도 시몬느의 강점으로 꼽힌다. 시몬느라는 회사에는 ‘처음’이라는 단어가 자주 붙는다. 80년대 후반 300달러가 넘는 고급 핸드백을 국내 처음 생산했다. 또 아시아 최초로 디자이너 의류 브랜드의 핸드백 라인을 직접 기획·개발했다. 8년 전 유로피언 럭셔리 브랜드도 맨 먼저 제조했다.

시몬느는 이에 만족하지 않고 스스로 글로벌 브랜드로 거듭나려는 야심을 차근차근 키우고 있다. 2003년 정하실업을 인수해 향수 화장품 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엔 세계적 패션 브랜드인 마이클 코어스와 독점 계약해 10년 동안 국내에서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내년 11월에는 베트남 공장을 완공해 글로벌 기지를 확장한다.

“명품 브랜드 개발은 국가와 기업 고유의 문화를 담아야 하는 작업이지요. 5년이 될지, 10년이 될지 모르지만 시몬느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일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믿습니다.” 

글=최은경 이코노미스트 기자<chin1chuk@joongang.co.kr>

사진=안윤수 기자

◆좀 더 상세한 기사는 중앙일보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 최신호에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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