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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핵정책 전환 신호탄인가/이홍구부총리 발언 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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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과거 「규명」­「불문」 사이서 속앓이/대화재개 감안 “정치적 결단” 주목
북한핵의 과거 투명성까지 보장받아야 하느냐,「현단계 동결론」을 수용해야 하느냐.
남북한과 미국,나아가서는 국제적으로 파장을 미칠 이 문제를 놓고 정부가 고민에 싸여있다.
20일 국회 외무통일위의 공개 전체회의와 비공개 간담회에서 이홍구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이 한 발언은 이런 정부의 고심 일단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부총리는 공개회의에서『북한핵의 과거는 걸코 불문에 부칠 수없다』고 말했다.그러나 비공개 간담회에서는 북한핵 과거투명성 문제에 대해『기술적으로만 접근하기는 어려우며 정치적 결단으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부총리는 또『과거 남북대화시 의제문제로 무산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고 전제하고『남북정상회담을 추진하면서 의제를 문제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핵투명성 보장을 남북대화와 경협등의 전제조건으로 내걸던 정부의 기존입장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그는 심지어『북한핵의 과거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정부의 입장은 분명하지만 어느 수준에서 어떤 방법으로 관철시킬 것인지가 제일 어려운 문제』라고 대북핵정책의 변화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시사했으며,의원들의 추궁이 잇따르자 『비공개 간담회에서 말씀드리겠다』는 말을 거듭했다.
이부총리는 민주당의 조순승의원(승주)이 『파키스탄식(기왕 개발된 핵은 인정하는 핵동결 방식)이 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도『나중에 말씀드리겠다』고 답변을 피해갔다.
이런 태도는 불과 수일전만 해도 상상하기도 어려운 것이었다.북한핵의 동결은 결코 문제의 해결이 아니라 미봉책에 불과하며 용납할 수 없다는 확고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비공개 간담회인데다 워낙 미묘한 국가의 이익이 걸려있는 문제인 탓인지 여야의원들은 이름을 밝히기를 거부했지만 이부총리의 발언에 대해『기술적으로 북한핵의 과거문제까지 밝혀내기는 시간이 많이 걸리고 복잡할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 같다』는 게 공통된 견해였다.
여당의 한 의원은『북한의 자존심을 지나치게 건드리지 않는등 북한의 현재 입장도 배려하는 차원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얘기』라고 설명했다.
핵투명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대화를 않겠다는 기존의 정부입장으로는 현실적으로 한걸음도 진전할 수 없으니 핵과거의 투명성문제에 대해「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한 야당의원은『정치적 결단이란 용어는 상황의 급격한 변화를 모색할 때 쓰이는 말』이라며『기존의 입장과 같으면 정치적결단이 필요없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정부가 미국등이 추진하는「핵동결」입장을 현단계에서 일단 수용하고 핵과거 문제에 대해서는 남북정상회담과 경협등을 진행해 나가면서 남북간에 정치적으로 단계적 해결을 모색한다는 얘기로 해석된다. 북미 협상중 국교수립을 논의하는 단계에서 핵투명성 부분이 자연스럽게 해소되기를 기대하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는 것이 참석자들의 얘기다.
이렇게 되면『핵과거를 불문에 부치지 않겠다』는 공식입장을 바꾸지 않으면서도 남북대화와 북한―미국의 3단계회담을 진행하는데 모순이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런 변화에 대해 정치권에서는『제재국면의 계속으로 생기는 정치적·경제적 부담을 고려한 것』이라고 해석했다.〈김두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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