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드라마 까레이스키 찍으러 러시아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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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김희애(27)는 한마디로 매끈한 여자다.화려하지는 않지만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별빛같은 아름다움을 가진 배우다.드라마에 모습을 감춘 그가 세제CF에서 보여주는 연기는 그런 이미지를 더욱 굳혀준다.『…열심히 일하는 우리나라 남자들이 생각나요』라며 짓는 미소는 진짜 세제로 씻은 듯 뽀얗고 매끌거려 얄미운 느낌마저 든다.
안타까운 거리감과 누이같은 친근감이 공존하는 그녀.슬픔을 압축한 탁월한 연기력이 모순된 매력의 열쇠라면 옳은 답일까.맺힌응어리를 터뜨리듯 폭발하는 연기를 위해 그는 멍하니 앉아 가슴속 상처를 더듬을 때가 많다.빈둥거리는 모습은 실은 연기력 충전시간이다.
올해 그는 연기생활 10년만에 처음 넉넉한 충전휴가를 즐겼다.지난해말 『폭풍의 계절』을 마지막으로 방송 출연을 일절 멈추고 푹 쉰 것이다.그런지 반년만에 그는 축적한 응어리를 몽땅 쏟아낼 굵직한 배역을 맡아 팬들 앞에 돌아왔다.M BC-TV가11월 방송 예정으로 제작중인 대하드라마『까레이스키』에서 애인을 찾아 시베리아 벌판을 헤매는 파란의 여인「남영」역이다.19일 그는 남영을 만나기 위해 러시아로 떠났다.낯선 동토에서 두달동안 10대부터 60대까지 격변의 시대를 사는 여장부를 연기하는 것이다.
『추위를 잘 타는 체질이지만 현지 기후가 가을날씨라 큰 걱정은 없어요.진짜 추위는 연기가 잘 안될 때 닥칠 것같아요.』 배역의 강도로 볼 때 추위 걱정은 안해도 좋을 듯하다.남영은 경성법전 출신 인텔리로 빨치산이 되어 러시아 적백내전에 참여하는 애인 상규(황인성)를 좇아 러시아로 떠나지만 동행한 상규의친구 기철(김병세)의 구애에 시달린다.기철을 뿌리치고 홀로 상규를 찾던 남영은 내전이 한창인 시베리아에서 만삭의 조선여인 기순(도지원)을 발견하고 출산을 거든다.그러나 기순이 상규의 아내임을 안 남영은 그때부터 옛 애인과 이별.상봉을 반복하는 기구한 운명에 처한다.
『한참 쉬다 큰 역을 맡으니 연조에 맞지 않게(?) 긴장이 돼요.이럴 때는 제 속 어디엔가 숨어있을「남영」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독거리죠.』 겸손한 표현을 잃지 않는 그이지만 준비는 프로다웠다.그의 여행 백을 빼곡이 채운 러시아 고유복장 20여벌과 구두.액세서리는 6개월동안 손수 마련한 것들이었다.
글:姜贊昊기자 사진:申寅燮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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