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후보의 ‘든든한 언덕’ 부인 김정옥씨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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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호 06면

신동연 기자

1988년 4월 13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이해찬 후보는 그날 밤 부인 김정옥(54·사진)씨와 나란히 누워 말했다.

“사람 좋은 호인보다 원칙 있는 남편이 좋아”

“사람이 뭐든 하려면 비빌 언덕이 있어야 하는데…. 정말 고마워.”

고백처럼 김씨는 이 후보의 언덕이었다. 이 후보는 신혼이던 80년 김씨와 생후 6개월 된 딸을 두고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으로 구속됐다. 옥바라지는 물론 집안 생계도 김씨 몫이었다. 김씨는 서울대 앞에서 사회과학서점 ‘광장서적’을 운영하며 이 일을 감당했다. 부산의 택시회사 사장 집 막내딸인 김씨는 고생을 모르고 자랐다. 하지만 김씨는 이 시기 “청계천 바닥에 돈 한푼 없이 던져놔도 살아갈 자신이 있다”고 큰소리칠 만큼 단단해졌다. 그는 출판사도 경영하고, 곰탕집도 하며 남편을 도왔다. 사업을 하는 김씨의 친정도 적지 않은 수난을 겪었다. 김씨의 친정아버지는 안기부에 끌려가 고초를 당했고, 광주청문회 땐 세무조사 협박을 심하게 받았다.

두 사람은 72년에 만났다. 서울대와 이화여대 사회학과 학술모임에서였다. 이 후보는 열심이었고, 김씨는 그런 이 후보에게 끌렸다. 보수적인 경상도 집안에서 자란 김씨는 민주적이고 대등한 부부관계를 꿈꿨고, 모임에서 남녀를 동등하게 대하는 이 후보에게 반했다. 김씨는 “실제로 결혼해서 가장 만족하는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 후보는 옥중에서는 물론 살면서 ‘사랑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대신 ‘고마워’라고 했다. 김씨는 그 말을 ‘사랑해’라고 생각하고 살았다. 그랬던 이 후보지만, “최근 4, 5년 사이에 실없이 (사랑한다는 말을) 좀 한다”고 김씨는 살짝 소개했다.

김씨에게 이 후보는 가정적인 남편이다. 어쩌다가 지방 맛집을 알게 되면 꼭 직접 차를 몰고 데려가곤 했다. 집안의 웬만한 전기공사도 알아서 척척 했다.

80년대 중반 서울 응암동 단독주택에 살 때 방안에 생쥐가 돌아다녔다. 그 쥐를 막대기로 때려잡는 남편을 보고 “참 든든했다”고 김씨는 회고했다. 김씨는 딸에게 “네 아빠는 우리가 위험에 빠지면 정말 ‘다이 하드(Die Hard)’의 브루스 윌리스처럼 물불 안 가리고 할거야”라고 이야기했다.

이 후보가 차가워 보인다는 세간의 평에 대해 김씨는 “교육부 장관 전에는 안 웃는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다”고 말하곤 “다른 사람들보다 절대적인 웃음양은 좀 적다”며 웃었다. 그는 남편이 교원 정년단축이나 BK21사업 등을 추진했던 교육부 장관 시절에 현재의 차가운 이미지가 생긴 것 같다며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도 “이해관계가 달라 모두가 만족하지 못해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있다”고 이 후보를 감쌌다.

김씨는 “좋은 게 좋다거나 사람 좋은 호인이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며 “남편을 선택한 것도 원칙이 있는 게 좋아서였다. 원칙이 없으면 어떻게 평생을 믿고 살 수 있겠나”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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