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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본’이 웃지 않는 이유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9호 03면

첩보영화 ‘본 시리즈’의 세 번째 작품인 ‘본 얼티메이텀’이 국내 극장가를 휩쓸고 있다. 개봉 첫 주에 국내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했고, 2주째인 추석 연휴에도 33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곽경택 감독의 ‘사랑’에 이어 2위다. 지역별로 보면 서울에선 ‘본 얼티메이텀’, 지방에선 ‘사랑’이 압승이었다는 분석이다.

칼같이 냉철한 첩보원 맷 데이먼

‘본 얼티메이텀’의 주인공 제이슨 본(맷 데이먼)은 왜 인기일까. 그에 대한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첩보영화의 대명사 ‘007’의 히어로 제임스 본드를 끌어낸다. 같은 이니셜(J. B.)이지만 둘은 대척점에 서 있다. 본드가 생각할 때 본은 움직인다. 본드가 여자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 본은 혼자 상처를 동여매며 신음한다. 본드가 농담을 던지며 특수장비로 적을 제압할 때 본은 이를 악물고 상대의 관절을 꺾는다.

‘제이슨 본 스타일’은 새롭다기보다는 고전적이다. ‘매트릭스’의 주인공 키아누 리브스나 ‘트리플 엑스(XXX)’의 빈 디젤은 물론 한 세대 전인 ‘토탈 리콜’의 아널드 슈워제네거, ‘다이하드’ 시리즈의 브루스 윌리스보다도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바로 1970년대 에스피오나지 영화와 전통적인 하드보일드 문학의 세계다.

‘말타의 매’(1941)의 험프리 보가트 이후로 영화화된 하드보일드 소설의 주인공들은 비정하고 위험한 도시에서 살아남는 길은 그것뿐이라는 듯 웬만해선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본이 웃는 모습을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해서일까. ‘본 아이덴티티’의 덕 라이먼에 이어 2편과 3편의 감독을 맡은 폴 그린그래스는 2편 시작 부분에서 일단 여주인공 마리를 죽였다. 그러지 않고선 본이 비장해질 수 없다고 판단한 듯싶다.

냉전(冷戰)이 한창이던 70년대로 가보자. 이 시기의 첩보영화들 속에서는 수많은 남자들이 웃지 않는 얼굴로 누가 좋은 편이고 누가 나쁜 편인지 구별하기 힘든 생지옥 속을 헤엄치고 있었다. ‘스콜피오’의 알랭 들롱이나 ‘아이거 북벽’의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웃지 않는 것과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이 웃지 않는 것은 같은 이유에서다.

물론 데이먼이 모든 영화에서 웃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는 출연하는 영화마다 배역 속에 녹아들었다가 다른 영화로 건너갈 때 흔적을 지웠다. 예를 들어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라이언 일병, ‘굿 윌 헌팅’의 천재 윌 헌팅, ‘리플리’의 사기꾼 리플리와 제이슨 본을 한 사람이 연기했다는 것은 네 영화를 모두 본 사람에게도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어떤 영화에 나와도 모두 ‘알 파치노’나 ‘로버트 드 니로’로 기억되는 선배들과는 사뭇 다르다.

1970년생이고 하버드대학 중퇴 학력의 이 영리한 배우는 여름이면 단짝 친구 벤 애플렉과 가족 휴가를 함께 가고, 촬영이 없을 때는 공립 도서관에서 자료 정리를 한다는 ‘범생이형’ 노력파다. 그는 세계적인 인기 캐릭터가 된 제이슨 본을 한 번 더 연기할 것인가. 글쎄…. “절대 하지 않겠다”고 말한 그지만, 이미 그는 ‘본 아이덴티티’ 출연 직후에도 “속편은 없을 것”이라고 얘기한 적이 있으니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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