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중앙일보 전문기자가 본 뉴욕필 서울공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2면

◎영혼의 선율… 오랜만에 베토벤 “만끽”/정상의 지휘­연주자가 빚은 완벽한 화음/독­미 예술혼의 절묘한 앙상블에 황홀감
또 다시 뉴욕필은 쿠르트 마주르와 함께 「서울의 신화」를 창조했다.
15년전 레너드 번스타인이 이끌고 내한했을 때와는 다른 빛깔의 「옷」을 입고 무대에 나타났다.지난 92년에 창단1백50주년을 맞이한 뉴욕필은 새로 맞아들인 사령탑 마주르의 음악을 완벽하게 들려주고 있었다.
통일 독일의 음악적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는 마주르에겐 한반도에 첫발을 내디딘 감회가 무척 새로웠을 것이다.청중들의 태도는 진지하다 못해 심각하기까지 했다.
이것이 정치적 감각이 뛰어난 마주르가 애초에 의도했던 바는 아닐까.라이프치히 청중들에게 통일의 열망을 불러일으켰던 것 처럼 민방위훈련을 막 끝낸 서울의 청중들은 그에게서 한없는 위안을 얻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세종문화회관의 로비가 이처럼 좁게 느껴진 적은 없었다.객석을가득 메운 청중들은 오랜만에 베토벤을 만끽했다.마주르의 베토벤은 스탠더드 레퍼토리의 박물관적 성격 운운하기에는 너무나 새로운 감동을 선사했다.지금까지 베토벤에게서 얻어낼 수 있는 음악적 정보가 모두 소진되지 않았음을 보여 준 것이다.이런 점에서 전반부에 연주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죽음과 변용』은 베토벤이라는 성소로 들어가기 위해 눈과 귀를 씻는 통과의례였다.베토벤을 새로 편곡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참신한 해석을 가미하고 있었지만,독일 고전주의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
토마스 트레이시가 협연한 네드 로렘의『잉글리시 호른 협주곡』은 전통적인 협주곡과는 달리 독주 악기가 선율을 주도해 나갔다.
특히 신세계 고향곡을 연상하게 하는 2악장은『20세기말에 탄생된 또 하나의 신세계 교향곡』처럼 들렸다. 1893년 뉴욕필이 「신세계」교향곡을 초연한지 1백년이 지났기 때문이다. 우리에게도 이런 기념비적인 작품이 과연 있는지 열심히 찾아 볼 일이다.
청중들에게 오래 참음의 미학을 채득하도록 권한다면 너무 무리일까.4악장 구성에 익숙해 있는 청중들은 악장 중간에 성급한 박수를 보내는가 하면,첫 서울 나들이라 많은 신경을 쓴것으로 보이는 베토벤의 『에그몬트 서곡』에서 곡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박수를 터뜨리는 사람들이 있었다.베토벤의 서곡이 앙코르 곡에서 값싼 행진곡이나 왈츠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었는지 모르지만,성급한 박수는 베토벤의 감동을 더욱 오래 지속시키려는 마주르의 프로그램 전략에 찬물을 끼얹는 행위였다.
맨손 지휘의 장점과 실내악적 감수성을 최대한 살린 이날 연주는 회복된「미국의 자존심」을 여실히 증명해 주었다.장신의 거구에 어울리지 않는 따뜻한 미소와 여유있는 몸놀림은 「연습과 준비는 철저히,그러나 실제 연주는 즐겁게」라는 교훈을 남겨 주었다.
오케스트라를 무대 앞으로 전면 배치하는 등 음향 면에서도 세심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