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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파·민족 '내몫 다툼' 혼란 가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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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이라크의 정치재건이 수렁에 빠져들고 있다. 연합군정에서 주권을 넘겨받아 자주적인 국가건설을 수행하려는 과정에서 다양한 종파.민족.정파의 정치적 이해가 엇갈려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시한 내 가능한가=연합군정(CPA)은 지난해 11월 이라크과도통치위원회(ICG)와의 합의를 거쳐 이라크 주권이양 계획을 확정했다. 올해 2월까지 헌법 제정 전 시행할 기본법을 마련하고, 이 법에 기초해 5월까지 간접선거를 통해 18개 주(州) 대표로 구성되는 잠정국민의회(TNA)를 구성한 뒤, TNA가 임시정부를 6월 말까지 출범시키고 ICG와 CPA를 해체한다는 게 주권이양 계획의 골자다.

연합군정은 또 주권이양 후 내년 3월 말까지 제헌의회를 선출하고 여기서 마련된 헌법안에 의거, 내년 말에는 다시 선거를 거쳐 이라크 공식정부를 수립한다는 구상도 발표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연합군정이 제시한 일정이 지켜지기 어렵다고 주장한다. 이라크 내 시아파.수니파.쿠르드족 간 뿌리 깊은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극동아시아 전문가인 알사이드 압딘 카이로대학 정치학과 교수는 이라크 정치재건 전망을 한국의 경험과 비교하면서 "시간이 충분치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압딘 교수는 "1945년 독립한 한국의 경우 제헌국회 구성과 정부수립에 약 3년이 걸렸다"며 "이라크 상황은 한국보다 더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압딘 교수는 "한국도 독립 후 민족진영인사, 좌익계열, 친미세력 간 등 정파간의 갈등으로 헌법제정과 정부수립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이라크의 경우는 민족.종파 간 갈등의 골이 깊어 타협안을 찾는 데 시간이 더 걸릴 것"이라고 분석했다.

"여기에 한국에서 미국과 소련이 대립했듯이 이라크에서도 쿠르드족 문제를 안고 있는 터키, 시아파의 본산 이란, 그리고 전쟁 후 이권을 챙기려는 미국이 존재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복잡하다"고 그는 덧붙였다.

◆시아파와 쿠르드족의 야심=미국 주도의 전후 정치재건 계획에 가장 반발하는 세력은 단연 이라크 인구의 65%를 차지하고 있는 시아파다. 시아파의 최고지도자 알리 알시스타니가 미국의 주권이양 계획을 거부하면서 올해 초 간접선거가 아니라 직접 선거로 조기에 제헌의회를 구성하자는 시아파의 대규모 시위가 연일 발생했다.

여기에 쿠르드족의 야심도 정치적 혼란을 초래하고 있다. 후세인 체포 직후 쿠르드족 출신 ICG의원들은 모술과 키르쿠크를 쿠르드스탄에 편입해야 한다고 주장해 이라크 내 타민족 및 정파와 주변국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쿠르드족은 현재 자치권을 인정받은 3개주뿐 아니라 세계석유의 약 6%가 매장된 키르쿠크주와 터키 및 시리아에 거주하는 쿠르드족과의 연결통로인 모술을 주도(州都)로 하는 니나와주의 장악을 시도하고 있다.

경제적 번영을 달성하고 주변국에 거주하는 2천5백만 쿠르드족과의 연결고리를 만들어 독립국가로 향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러나 아드난 파차치 ICG순번의장은 "연방제는 행정구역인 주(州)를 근거로 한 것이지 민족이 기준이 될 수 없다"고 못박았다.

카이로=서정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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