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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온 국민이 발가벗겨지고 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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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중요한 자리에서 분위기를 깨며 울리는 전화벨 소리. 눈치를 살피며 받았더니 들리는 광고 메시지.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낭패를 겪어 봤을 것이다. 지난달 KT와 하나로텔레콤이 고객의 개인정보를 무단 사용하다 경찰에 적발됐을 때 온 국민이 공분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다. 그런데 어제 밝혀진 국민건강보험공단과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개인정보 유출 실태를 보면 이 정도는 그야말로 애들 장난에 불과한 수준이었다.

조직폭력배가 낀 불법 채권추심업체에 가입자 정보를 넘기거나, 아는 사람의 결혼 상대자가 진료받은 내역을 조회해 파혼에 이르게 하고, 친구 애인의 임신중절 사실을 들춰보는 등 두 공단 직원들이 각종 이권이나 청탁, 호기심 등으로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마구잡이로 열람하고 유출해 왔다는 데 경악을 금할 수 없다. 전 국민이 가입된 건보의 경우 불법 열람으로 징계받은 직원이 2003년 2명에서 2005년 8명, 지난해 24명으로 해마다 크게 늘어나고 있으며 1800만 명이 가입한 연금공단은 지난해 1, 2월 두 달 동안에만 691명이 1647건의 정보를 무단 열람했다는 것이다. 내 전화번호뿐만 아니라 재산·의료기록 등 정보가 줄줄 새고 있는 것이다.

한국정보보호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신고된 개인정보 침해 사례가 2만3333건에 달한다. 이렇게 샌 정보는 전화 사기나 불법 전자상거래 등 각종 범죄에 악용될 수 있는 것이다. 개인정보 도용을 더 이상 방치해서는 안 된다. 이는 정보화 사회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 범죄다. 시정조치나 과태료 부과 같은 솜방망이 처벌로는 재발을 막을 수 없다. 사정 당국은 개인정보 유출·도용을 끝까지 추적해 형사 범죄자로 다스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