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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학교라구?”(「파라슈트키드」의 낮과 밤:8)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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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가정집규모 학교가 “칼리지”/인가 못받은 사설도 수두룩/장삿속 대학 간판에 수준은 중학교 이하
「C칼리지」를 찾아 캐나다 토론토시 서남쪽 고속도로로 올라섰다. 시가를 벗어나 외곽지역 나지막한 1층 슬라브 건물벽에 붙어있는 가로 3m,세로 50㎝ 남짓의 간판이 아니었으면 취재진은 학교인줄 모르고 지나칠뻔 했다.
주위에 집들이 별로 없는 넓은 들판인데도 학교 울타리안의 공간은 건물을 빼고 10여평 남짓. 50평정도의 가정집으로 보이는 단층 기숙사는 학생들을 더 수용하기 위해 만든듯 반지하에 칸막이를 만들어 놓았다. 쭈그리고 앉아 창밖에서 들여다본 3인1실의 기숙사 방에는 침대·책상,그리고 방 한쪽에 선풍기가 한대 놓여 있었다.
서울을 떠날 때 가져간 유학원의 안내서와 1주일전 받아놓은 교민신문에 이 「칼리지」는 『○○대학은 외국 유학생의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모범학교』라고 광고했다.
『수영장·테니스 코트·냉난방시설을 완비한 현대적 시설의 기숙사…』라는 선전문구도 있었다. 수영장·테니스 코트는 인접한 시립공원의 부대시설을,냉난방시설이란 기숙사 방에 놓인 선풍기를 말하는 셈이었을까.
토론토 교육청을 찾아간 취재진은 어렵지 않게 이 학교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토론토 F고교에서 외국인 학생들과 상담중인 토머스 램씨(45)는 『Seeing is believing』(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뜻)이라며 이 학교를 다니다 전학한 허영군(17·11학년)을 소개했다.
93년 3월 서울 M유학원에 1년치 학비와 기숙사비로 8백만원을 주고 이 학교로 유학갔던 허군은 『도착한 첫날 머리가 띵하더라』고 말한다.
『이건 학교가 아니더라구요. 우리나라 중학교 수준만이라도 됐으면 그렇게 놀라지 않았지요. 캐나다 학생은 고사하고 한국·홍콩·대만 유학생들만의 학교였고 더욱 한심한건 선생님들이었어요. 10명도 안되는 선생님들이 두 세개 과목씩 가르치는데…. 우선 겁나는게 내가 이 학교를 다녀도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건지 불안해 잠이 안오더라니까요.』
허군과 함께 이 학교로 유학온 한국 학생들로부터 빗발친 국제전화를 받은 서울의 학부모들이 유학원으로 몰려가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진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3명의 학부모는 직접 토론토까지 와 학교를 옮겨주지 않으면 고소도 불사하겠다고 별렀다.
『C칼리지처럼 유학생들만 받아 장삿속을 챙기는 엉터리 학교가 토론토에만 서너군데 더 있다고 들었어요. 엉터리 학교들에 한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이름들이 거창하다는 거죠.』
결국 허군은 유학 두달을 허송하고 다른 학교로 전학했으나 이미 낸 등록금은 되돌려받지 못했다. 환불을 요구하는 학부모들에게 학교측은 입학 당시 「전학 때에도 학비 반납은 불가능하다」는 조항이 들어있는 계약서를 펼쳐보였다.
호주 유학생이 급증한 91년 여름 서울 M고 2학년을 다니다 유학온 X군(20)은 방학때 귀국하면 수도 없이 듣는 질문이 있다.
『맞아,너 유학갔지. 무슨 학교라고 그랬지.』
유학생활 4년째에 접어든 X군은 어학원·사립고교 두군데를 거쳐 시드니 본다이 지역에 있는 P칼리지에 다니고 있다.
○어학원도 칼리지
『친구나 친척들이 물으면 그냥 칼리지 다닌다고 그러죠. 대학인지,고등학교인지 알게 뭐예요.』
5월23일 시드니의 한 가라오케에서 취재진과 만난 X군.
그가 다니는 P칼리지는 대학은 물론 아니고 유학생을 위해 중등학교 11∼12학년(고2∼3) 과정이 개설돼 있다. 하지만 정부에 고교과정 허가를 신청만 하고 인가를 받지못한 상태여서 사설학원일뿐 정규 고등학교가 아니다.
영어권 국가에 유학온 학생들조차 혼동을 일으키는 칼리지(college).
영국의 옥스퍼드대 등에서는 자치단체 성격을 갖는 명문 단과대학을 뜻하지만 영국연방인 호주에선 수준에 관계없이 어학원이든 사설학원이든,아니면 전문대학과정을 교육하는 태프(tafe)든간에 모두 칼리지로 불린다. 또 뉴질랜드에선 중등학교(중·고교)를 뜻하고 캐나다도 비슷하다.
따라서 이름에 매달리는 유학생들을 속이기엔 안성맞춤인 셈이다.
『학교측은 학생 1명당 수업료의 15∼25%에 해당하는 2천달러(1백20만원·이하 호주달러) 정도를 알선한 유학원에 소개료로 줍니다. 그야말로 장사인 셈이죠.』
서울에 지사를 두고 있는 시드니 현지 유학원 한 관계자의 실토다.
그는 「더이상의 한국 유학생의 피해를 막기 위해」 익명을 전제로 조기 유학생들이 피하길 바란다며 P외에 W·M 등 시드니의 엉터리 칼리지 세군데를 꼽아주기도 했다.
P칼리지는 학생 30여명중 3분의 2가 한국 유학생이고 문제의 W·M칼리지도 5분의 3 이상을 차지한다고 그는 말했다.
『한국 유학생은 말 그대로 「봉」이죠. 오죽하면 여타 동남아 유학생에게 주는 개발도상국 장학금을 유독 한국학생만 제외했겠어요.』
○구멍가게 대학도
유학 대상국가의 다양화로 유학생을 고객으로 간주하기 시작한 호주·캐나다 등 신흥 유학국들의 배후(?)에는 잘 알려진대로 「엉터리 학교의 최고봉」인 미국이 있다.
2∼4년제 대학이 3천5백35개에 칼리지란 이름을 쓰는 직업학교가 무려 7천여개가 산재한 미국. 하버드·예일대 등 세계 최고수준의 대학이 있는가하면 좀 과장해 「구멍가게만한」 대학 아닌 대학도 공존한다.
샌프란시스코의 모한의대.
분명 칼리지란 명칭이 붙은 단과대학중 하나다.
한의사 출신인 재미교포가 92년 주교육부의 임시인가를 받아 문을 연 이 학교의 학생수는 막 2학년을 끝낸 15명이 전부.
추후 시설을 갖춰 정식인가를 받는다는 조건으로 개교했으나 추가시설 보완은 물론 지난해엔 신입생도 뽑지 못했다.
임시인가마저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설립자는 올초부터 『50대 50으로 함께 투자할 한국인을 찾는다』며 물주 탐색에 나섰다.
『이런 식으로 가정집에 간판만 달아 하루 아침에 「칼리지」나 「유니버시티」가 생겨나는 곳이 미국이죠. 이름은 칼리지이지만 우리와는 개념이 달라요. 인가도 쉽고 졸업하면 학위대신 수료증을 주는,우리로 치면 학원이나 직업학교인 셈이죠. 대학에 다닐 학업수준이 안되는 유학생을 주고객으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하루 아침에 사라지기도 하는….』
샌프란시스코 한국교육원 김중기원장의 말이다.
「TOEFL없이 유학가능」만 내걸면 한국 유학생은 몰려간다. 「간판만 따면 된다」는 이른바 도피 유학생들이야 학교수준을 따질 필요가 없다지만 막상 알아보려해도 마땅히 알아볼 곳이 없는 정보 부재의 황무지가 우리 유학정책의 현주소다.<권영민·이석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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