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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Report] 한 가마 100만원도 아깝지 않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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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추수를 앞둔 강화 초지마을을 찾았다. 안개 낀 가을 바다를 보며 해안도로를 따라 내려가니 탁 트인 너른 평야가 눈앞에 펼쳐졌다. 평야를 가득 메운 벼가 아직 푸릇하다. 북쪽 바닷가여서 기온이 상대적으로 낮은 탓이다. 수확도 다른 지역보다 한 달쯤 늦다.

▶농부인 임종수씨가 논에서 ‘매화마름 쌀’을 들고 활짝 웃고 있다.

논 한가운데서 풍성한 수확을 기대하며 흐뭇한 미소를 짓는 농부 임종수씨를 만났다. 초지리에서 태어나 한평생 농사를 짓고 있다는 임씨. 6년 전만 해도 여느 농부처럼 평범한 일반 쌀을 키우고 있었다. “그땐 농약과 제초제를 쓰는 것이 농사짓는 데 필수 조건인 줄 알았다”고 한다.

그가 아주 특별한 쌀인 ‘매화마름 쌀’을 짓기 시작한 지도 어느새 6년째 접어들었다. 아직은 낯선 매화마름 쌀 소개를 부탁했더니 자랑을 앞세운다.

“매화마름 쌀요? 좋지요. 이 쌀을 먹기 시작한 이후 병원 한번 간 적이 없습니다. 매화마름 쌀로 밥을 지어 먹으면 몸이 좋아진다는 걸 스스로 느낄 수 있습니다. 물론 맛도 ‘최고’지요.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임씨의 얘기를 들으니 쌀값이 비쌀 것 같다. 생각보다 너무 비싸다. 5㎏에 2만5000~3만원. 80㎏ 한 가마를 기준으로 하면 최고 50만원에 가깝다. 보통 쌀과 비교하면 3배, 친환경 쌀로 홍보하는 다른 쌀에 비해서도 1.5배다.

하지만 이 값도 따지고 보면 제 값이 아니다. 국제환경단체 한국내셔널트러스트의 정우혁 간사는 “시장에서는 100만원을 불러도 좋다”며 “이익을 낼 목적이 아니어서 값을 낮춘 것”이라고 설명한다.

5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쌀값으로는 ‘초고가’임이 분명하다. 이해하기 쉽지 않다. ‘친환경 농법을 쓴 청정미’에서 답을 찾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친환경’이니 ‘청정미’니 하는 쌀은 종류만 수백 가지다. 그래서 매화마름 쌀의 ‘값’은 한편으로 미스터리일 수 있다.

쌀의 브랜드로 쓰이는 ‘매화마름’이 미스터리를 푸는 열쇠다. 매화마름은 환경부가 지정한 멸종 위기 식물 중 하나다. 60년대까지만 해도 흔했던 이 풀은 각종 개발사업이 줄을 잇고 농약과 제초제, 화학비료가 남발되다 보니 30여 년 사이 멸종 위기를 맞았다.

여기에 주목한 것이 한국내셔널트러스트다. 98년부터 매화마름을 보존하자는 운동을 전개한 것이다. 정 간사는 “매화마름 보존은 청정지역 보존과 같은 의미”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일단 쌀의 특성을 알게 된다. ‘청정미’다. 하지만 다른 ‘청정미’와는 종류가 다르다. 강화군 농업센터의 정해곤 실장은 “매화마름은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임을 알려 주는 지표”라고 설명했다. 매화마름은 국내에서 오직 강화도 초지리와 당산리 두 곳에서만 난다.

▶임종수씨는 직접 도정 및 포장하여 소비자에게 판매한다.

결국 매화마름 쌀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지역에서 생산된 쌀’이란 의미다. 공해에 찌들고 농약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현대 도시인들에게는 엄청난 매력이다. 최근 경기도의 한 지역 쌀이 청정 쌀이라고 해서 순식간에 팔린 적이 있다. 그 쌀 역시 가마당 100만원이다. 그런데 ‘세계에서 가장 청정한 지역 쌀’이니 그 정도 또는 그 이상의 가치를 갖는 것이다.

무농약·유기농 농법을 쓴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농약이 없던 시절부터 전통적인 벼농사 기법으로 알려진 ‘우렁이 농법’이 사용된다. 우렁이 농법은 풀을 먹고 사는 우렁이를 논에 풀어 잡초를 없애고, 그 배설물을 천연비료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제초제 등 각종 농약은 물론 화학비료도 쓸 필요가 없다. 농부 임씨는 “우렁이 농법을 쓰는 이곳 벼농사는 다른 곳과 크게 다르다”며 “옛 조상들의 농사짓는 방법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매력적인 쌀이지만 아는 사람이 드물다. 시장에 출시되지 않는다는 게 중요한 이유다. 생산량이 워낙 적어 시장에까지 갈 수 없다. 연간 생산량이 30가마에 불과하다.

게다가 이 쌀은 1400명에 이르는 한국내셔널트러스트 회원에게 우선적으로 돌아간다. 10월 말 수확이 시작될 무렵 회원들은 이곳에 내려와 직접 추수와 도정을 하고 쌀을 사 간다. 하루 이틀 사이 30%가 팔리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왜 시장에서 100만원에 팔 수 있는 쌀값이 50만원이 채 되지 않는가라는 의문도 풀린다. ‘회원에 대한 배려’인 것이다. 정 간사는 “회원 회비로 농지를 사 쌀을 생산·판매하며 매화마름을 보존하느니 만큼 회원을 위한 배려는 당연하다”고 설명했다. “하나의 공통체로 운영되는 회원에게 큰 이익을 남기기 위해 장사를 할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것이다.

그렇다고 꼭 회원들만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수확량의 30% 정도는 일반인에게 판매된다. 판매 물량이 별로 없으니 굳이 홍보할 필요도 느끼지 못한다. 인터넷(www.nationaltrust.or.kr)이나 본부 전화(02-739-3131)로 주문하면 살 수 있다. 물론 빨리 해야 한다.

강원도 횡성의 ‘한우’

“짝퉁도 혈통은 속이지 못하죠”

“여기 소 키우는 데 맞나요?”

놀랐다. 비가 추적추적 내릴 때 도착한 강원도 횡성의 한 축사. 소똥 냄새가 심하게 날 것이라 생각했다. 예상과 달리 한우 농가의 모습은 ‘깨끗함’ 그 자체였다. 이곳에서 축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일섭씨는 “비가 안 왔으면 지금하고는 차원이 달라요. 먼지가 보일 정도로 깨끗한데 비가 와서 아쉽네요”라고 말한다.

그냥 깨끗한 게 아니다. 축사는 여러 가지로 눈길을 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큰 저울이다. 소마다 각각 몸무게를 재 사료량을 측정한단다. 소가 저울에 올라가 몸무게가 나오면 그에 따라 소의 한 끼 식사량이 측정된다.

김씨는 “사람도 제때 적당히 밥을 먹어야 건강하고 소도 마찬가지”라며 “건강한 소와 건강하지 못한 소는 고기 맛 차이가 크다”고 설명한다. 이 자료는 컴퓨터로 입력돼 개별 소의 건강자료로 활용된다. 이 모든 것이 자동으로 이뤄진다.

횡성이 한우로 유명해진 데는 이만한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제 횡성 농민에게 한우는 최고 자산이다. 김씨는 “한우가 효자”라며 “다른 지역에서는 소를 팔려고 하지만 횡성에서는 한우 농가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횡성에서는 2000농가에서 3만 두의 소를 키우고 있다. 계속 늘고 있다고 한다.

값은 물론 비싸다. 갈비·등심·안창살 등 4.8㎏짜리 한 세트가 ‘프리미엄 명품 세트’라는 이름으로 70만원을 호가한다. 일반 한우에 비해 2~3배 값이다. 횡성 축협의 정의강 상무는 “횡성 한우는 근본이 다르다”고 그 이유를 설명한다.

▶한우를 키우는 김일섭씨.

“첫째 한우를 사육하기 좋은 환경입니다. 물 맑고 공기 좋은 환경에 해발 100~800m가 되면 최적이지요. 둘째는 ‘5통’이 이뤄진다는 겁니다. 보통 한우 키우는 농가에서는 ‘혈통’과 ‘통일된 사료’ ‘사양관리 통일’ 등 ‘3통’이 이뤄집니다. 이곳 횡성에서는 여기에 ‘유통 통일’과 ‘외식산업 통일’ 등 ‘2통’이 추가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횡성은 한우의 혈통과 족보를 철저히 관리하지요.”

소에도 혈통과 족보가 있다니 신기하다. 정 상무는 “횡성 한우의 우수한 유전자를 보전하기 위해 수정란 이식 사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그동안 일반적인 한우 종자 개량사업은 수소의 품종으로만 이뤄졌다.

엄선된 수소의 정액을 암소에 주입해 왔지만 이제 횡성에서는 좋은 형질을 가진 암소의 수정란을 대리모 암소에 이식하는 방식으로 순수 혈통을 보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95년 시작된 브랜드 전략으로 ‘횡성 한우’의 브랜드 파워는 최강이다. ‘짝퉁 브랜드’가 판을 칠 정도다. 횡성 한우 집이라고 모두 믿으면 곤란하다. “짝퉁은 맛부터 다르다”는 정 상무는 “횡성에도 짝퉁 브랜드가 있으니 조심하라”고 말한다.

횡성에서 진짜 한우 집을 찾으려면 ‘횡성 한우’ 로고가 붙은 곳을 찾으면 된다. “서울·경기도는 물론 대구·부산에서도 손님이 온다”는 한 식당 주인은 “횡성 한우 맛을 한번 보면 또 찾을 수밖에 없다”고 자랑한다.

이재광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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