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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택자 부담 경감 기대 … ‘투기 억제 틀’ 유지될 듯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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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SUNDAY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한가위 보름달만큼이나 부풀어 오르고 있는 게 하나 더 있다. 부동산 경기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이다. 현재 대선전에서 앞서고 있는 사람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다. 그런데 그는 최근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며 주요 대선 쟁점으로 부각시키고 있다. “서울 도심을 재개발·재건축하고 용적률을 조금 높여주면 신도시 몇 개 만드는 것보다 낫다”, “한 사람이 장기적인 거주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1주택에 대해 중과세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발언을 했다. 노무현 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이 후보의 용적률 얘기에 노 대통령은 ‘망발’이라며 맹공을 퍼붓기도 했다.

더구나 손학규·이해찬 예비후보 등 여권 주자 진영에서도 “1가구 1주택자에 대한 양도세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시장은 일단 반갑다는 표정이다. 서울 강남에서 호가를 낮춰서라도 팔겠다던 재건축 아파트 급매물이 자취를 감춘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새로 나오는 물건도 없고, 약세이던 호가도 다소 높아졌다. 김영진 내집마련정보사 사장은 “정도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주자가 규제 완화나 세금 부담 경감을 얘기하고 있는 데다, 야당 후보가 승리하면 수요 억제에서 공급 확대로 정책이 바뀔 것이라는 기대가 널리 퍼져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전문가는 보다 신중한 입장이다. 양해근 우리투자증권 부동산팀장은 “관련법을 모두 바꿔야 하는 현실적 문제는 물론이고 정책의 틀을 바꿨다가 실패할 경우 지게 될 정치적 부담을 생각하면 현실적인 접근을 할 수밖에 없다”며 “미세조정은 몰라도 파격적인 변화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상준 리얼티랩 소장도 “부동산 정책은 정권의 성향보다는 당시의 시장 상황에 따라 좌우돼왔다”며 “새 정부가 들어선다고 해서 재건축에 대한 규제가 곧바로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면 김칫국부터 마시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강남 재건축’ 어찌 될까=강남 재건축에 대해선 정반대의 시각이 존재한다. 이명박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통해 도심 지역의 공급을 늘리면 당장은 집값이 올라도 장기적으로 안정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예컨대 현재 1000가구 규모로 지어야 하는 재건축 아파트의 용적률을 250%에서 300%로 높여주면 200가구 정도의 일반 분양분이 늘어난다. 이런 식으로 하면 도로 등 인프라 비용을 들여 신도시를 만들지 않아도 공급 확대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지만 현실적으론 걸림돌이 적지 않다. 당장 ‘공급은 별로 안 늘고 전국적인 집값 상승만 불러올 것’이라는 반론이 만만치 않다. 집값은 뛰지만 공급 확대엔 몇 년의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이 기간 동안 쏟아질 비판을 감당하기엔 정치적 부담이 너무 크다. 그동안 정부가 부동산 시장이 불안해질 때마다 단기 대책을 남발해온 이유이기도 하다.

법률 정비도 난제다. 핵심 이슈인 재건축과 용적률은 국토 이용 및 계획에 관한 법률과 도시 및 주거환경 정비법 등의 제한을 받는다. 국회 과반수는 기본이고 야당의 동의라는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김재언 삼성증권 컨설턴트는 “전 국민적 관심사인 부동산 관련법은 여당이 일방적으로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다”며 “종합부동산세를 도입한 세법과 주택 관련 법안 개정 때도 한나라당의 동의가 필요했다”고 지적했다. 신규 투자자 입장에선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그림의 떡’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명박 후보는 서울시장을 지낼 당시 대대적인 강북 뉴타운 개발을 시작했지만 지구 지정과 함께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어 거래를 원천 봉쇄했다. 현재로선 시장 상황에 따라 부분적인 완화는 가능해도 전면적으로 규제를 풀기는 어려울 것이란 예측이 우세하다.

■실수요자 부담 완화 기대=부동산 세제의 변화는 어느 정도 예측이 가능하다. 실수요자 부담을 낮추는 쪽이다. 대선 주자들은 물론 정부도 1가구 1주택 장기 보유자의 양도세 감면에 동의하고 있다. 정부도 최근 발표한 세제개편안에서 1가구 1주택이지만 6억원 이상 주택을 소유한 사람들에 대한 ‘장기보유특별공제’를 확대하는 방식으로 양도세 부담을 줄여주기로 했다. 현재의 안정세가 지속된다는 전제 아래, 양도세 중과세를 받는 집값의 기준을 현재 6억원에서 9억원 이상으로 높이고, 장기 보유자와 노년층의 세율을 낮춰주는 방안이 추진되리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다.

논란이 되고 있는 종부세는 변화가 없을 것이란 예상이 많다. 종부세 대상자가 전체 국민의 4%에 불과한 데다,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어서다. 종부세와 재산세를 합쳐 재산보유세를 신설하는 방식으로 사실상 종부세를 폐지하겠다던 이 후보도 최근 ‘정책의 일관성 차원에서 1∼2년 지켜보겠다’며 한 발짝 물러섰다. 이 때문에 양도세 수준으로 과세 기준을 완화해 부담을 줄여주는 정도가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수요가 아닌 투기 수요에 대한 억제 정책은 바뀌지 않을 전망이다. 이 후보도 “투기적인 재건축을 막고 강남 재건축 아파트 가격을 지속적으로 감시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정책과 정권은 무관”=대선 결과가 부동산 정책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할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이 많은 것은 과거의 경험 때문이다. 시장이 출렁일 때 나왔던 굵직한 정책들이 정권의 성향보다는 당시 부동산 시황에 따라 좌우됐다는 것이다.

군사정권의 연장기이던 80년대 말 집값이 큰 폭으로 뛰면서 민심이 흔들리자 노태우 정부는 잇따라 강경 정책을 내놓았다. 개발이익의 20∼25%를 환수하는 개발부담금제, 투기지역 내 유휴지와 기업의 비업무용 부동산에 대해 중과세하는 토지초과이득세, 서울 등 6대 도시에서 한 가구가 200평 이상의 택지를 구입할 수 없게 한 택지소유상한제 등이 1990년을 전후해 잇따라 입법화됐다. 이 중 토지초과이득세가 나중에 헌법재판소로부터 위헌 결정을 받았을 정도로 ‘초법적인’ 수요 억제 정책이 펼쳐졌다. 분당·일산 등 1차 신도시 5곳도 이 때 건설됐다.

일부에서 ‘좌파 정부’라는 평가를 받았던 김대중 정부 때는 정반대 상황이 펼쳐졌다. 외환위기 이후 집값이 폭락하고 건설산업이 위기에 빠지자 건설경기를 부양하기 위한 다양한 정책이 제시됐다. 대표적인 게 99년 실시된 분양가 자율화다. 정부가 정해주던 가격 상한선이 사라지며 아파트 품질이 높아졌다는 평가와, 분양가 상승을 부추겨 부동산 거품의 단초를 제공했다는 비판이 엇갈렸다. 98∼99년, 2001∼2003년엔 전국, 또는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 주택을 사면 농어촌특별세만 물리고 양도세를 면제해주는 정책이 펼쳐졌다.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김대중 정부보다는 노태우 정부의 수요 억제 및 신도시 공급 정책에 가깝다. 박원갑 스피드뱅크 연구소장은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집값은 단순한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문제”라며 “차기 대통령이 누가 되든 지나친 상승이나 하락을 막는 쪽으로 정책을 펼 수밖에 없으므로 섣부른 기대감은 금물”이라고 말했다.

나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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