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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촌 건설 고국서 도움을”(설땅없는 중앙아 한인들:5·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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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연해주 가려해도 정착지없어 망설여/공단조성 한인위주 고용도 방편
어디론가 떠나긴 떠나야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중앙아시아의 한인들은 마땅한 대안이 떠오르지 않는 상황에서 한국이 도와주었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을 갖고 있다.
연해주로의 이주도 아직은 한인들의 공감대나 확실한 대안으로 보기는 어렵고 다만 「어려움을 피해 연고가 있는 곳으로 간다」는 개인적 자구책에 그치고 있느 실정이다.
○자치주 한때 추진
현지정착을 희망하는 한인들은 『한국기업들이 투자를 많이하면 고용확대로 지위향상과 경제문제 해결이 가능해 다른 곳으로 이사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어려움은 많다. 우즈베크에서 자동차공장 건설 등 대규모 사업을 펼치고 있는 대우의 정희주본부장은 『우즈베크에서 한인들이 차지하는 1%의 비율을 크게 넘는 예외적 취급을 하기엔 어려운 점이 많다』고 말하고 있다.
이 때문에 연해주자치주 설립,또는 한인 집단촌건설이라는 대안은 중앙아시아 한인들에겐 가장 현실적인 시나리오로 여겨진다. 한인자치주는 89년 강제이주를 당했던 한인들에 대한 명예회복 선언이 있고 나서 구체화됐다. 대상지역은 연해주의 올긴 오브라스치지역. 남북 1백20여㎞,동서 60∼70㎞ 길이의 해안 지경으로 91년 2월 쿠즈네초프 당시 연해주 주지사는 『자치주를 허락한다. 빨리 한인들을 이주시키라』고 말해 급진전되는듯 했다. 그러나 소련붕괴후 지금의 나즈라첸코 주지사는 『한인들이 오는데 반대하지 않지만 자치주는 안된다』는 입장을 밝혀 흐지부지한 상태다.
이같은 상황변화에도 불구하고 한인집단촌은 극동의 중심지 하바로프스크에서 8백여㎞ 남동쪽,나홋카 북쪽 40㎞지점에서 추진되고 있다. 하바로프스크에선 기차로 17시간만에 도착하는 파르티잔스크시의 고려인협회 김블라디미르 회장(67)이 한인촌을 세우기 위해 집념을 불태우고 있다.
김씨의 구상은 중앙아시아의 한인을 수용하기 위해 한때 수청(러시아명 수창)이라 불렸던 이 시의 외곽 25㏊의 땅에 10년안으로 5천명 규모의 「신한인촌」을 1차로 건설하고 이어 이같은 집단촌을 타지역으로 확산시켜 나간다는 것.
○노인들 이주반대
우즈베크공화국 페리나가 부지사를 지냈던(81∼83년) 그는 89년 그 곳을 떠나 파르티잔스크로 온뒤 곧바로 이 사업에 착수했다.
그는 89명의 중앙아시아 한인들로부터 1만루블씩 거둬(당시 단독주택 1채에 2만5천루블) 91년 길옆 1백m쯤 들어간 곳에 나무가 많은 산기슭을 연해주 주정부로부터 구입했고 92년 2월 단독주택 47동과 아파트 10동(2백가구분)의 건축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소련붕괴에 따른 급격한 인플레로 건축비가 1천배나 뛰어올라(예상금액 5억루블·약 2억5천만원) 지금은 거의 절망적인 상태에 처해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도 나이나 사는 여건에 따라 여러가지로 나타난다. 타슈켄트의 고려인협회 김표트르 회장(60)은 『그런 생각(자치주 또는 집단촌)은 실정을 모르고 하는 소리다. 한인의 정치집단화는 불가능하다』며 타슈켄트·알마아타 한인의 60%가 『현지에 그대로 남아살겠다』고 했고 블라디보스토크 시민의 95%도 한인이주에 반대했다는 92년 러시아 경제연구소의 여론조사를 예로 들었다.
그러나 타슈켄트에 사는 김볼로댜씨는 (33·사업) 『한인의 자치구역이 있다면 나뿐 아니라 모두 가려고 할 것』이라고 했고 타지크의 수도 두샨베에서 하바로프스크로 이주해온 황루슬란씨(37)도 『두샨베 한인들도 오고 싶어 했지만 연고가 없어 연해주로 못왔다』고 말했다.
대체로 나이가 많거나 직업이 안정된 사람은 이주에 부정적인 반면 젊거나 지위가 덜 안정된 계층은 실현가능성에 의문을 갖지만 필요성에는 적극 동감을 표하고 있다.
○한국공단 구체화
아무튼 「한인들을 위한 땅을 찾기 위한 사업은 한인사회의 구심점이 없이 몇몇 개인에 의해 추진된다는 한계 때문에 추진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점에서 연해주 나홋카지역에서 구체화돼 가는 한국전용공단 건설계획은 주목받을만 하다.
94년 4월 서울에서 열린 한­러극동협회(회장 장치혁 고합그룹 회장)와 러시아 극동시베리아 한국협력위원회(회장 나즈라첸코 연해주주지사) 총회에서는 나홋카에 1천만평 규모의 한국전용공단 설립에 합의했다.
이 사업이 완공된 뒤 들어설 각종 공장에 필요한 6만명의 노동력 가운데 4만2천명을 한인으로 고용한다는 계획도 있다. 그렇게되면 이 사업은 자치 자치권 회득까지도 가능한 한인촌 건설의 문을 자연스럽게 열어 줄 것으로 기대된다.
따라서 앞으로 어떻게 방대한 구 소련 지역에 흩어져 있는 한인들의 의사를 결집하고 정치적 마찰을 최소화하는 가운데 실질적인 한인촌을 건설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과제라 하겠다.<블라디보스토크=안성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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