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前 책 도둑을 밝힙니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28호 02면

마흔 살 넘은 분은 아실 겁니다, 옛날에 책이 얼마나 귀했는지. 빡빡하게 굴러가는 평범한 가정에서 교과서·참고서가 아닌 책을 별도로 사보기 어려웠습니다. 교육인프라가 형편없던 당시, 학교 도서관의 사정은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짐작하실 겁니다. 그래서 각자 몇 권의 책을 가져와 교실문고에 모아놓고 돌려보고는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서울 마포의 국민학교(초등학교)도 그랬습니다.

5학년 때였습니다. 문고에서 빌릴 수 있는 책은 일주일에 한 권뿐이었습니다. 인기 서적은 차례가 돌아오기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방과 후에 청소담당으로 남는 날이면 보고 싶은 책을 문고에서 슬쩍 집어와 집에서 읽고 몰래 반납하곤 했습니다.

어느 날 사고가 터졌습니다. 담임 선생님이 문고 목록을 점검하시다가 책이 사라진 걸 알게 된 거죠. 선생님은 조회(朝會) 시간에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 무릎을 꿇은 채 눈을 감게 하고 목소리를 깔아 말씀하셨습니다.
“누가 책을 가져갔는지, 난 안다. 니들 얼굴만 보면 알아. 조용히 말할 때 내일 저녁까지 꼭 가져와.”

갈등은 한나절 반 동안 마음을 헤집어 놓았습니다. 하지만 끝내 고백하지도, 책을 반환하지도 않았습니다. 커밍아웃에 따른 두려움 때문이었지요. 빼돌렸던 책은 코난 도일의 『주홍색 연구』였습니다. ‘주홍색 연구’는 마음속에 ‘검은 비밀’로 오랫동안 남았습니다.

요즘은 책이 귀해서 못 보는 분들은 거의 없을 겁니다. 지난 한 해의 출판량만도 4만5000여 종, 1억1000만 권에 달하니까요. 하지만 열렬한 책벌레가 많은 것 같지는 않습니다. 가구당 서적구입비가 월평균 7000여원에 불과합니다. 이를 두고 한국인의 허약한 독서습관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바쁜 일상에서 꼬박꼬박 좋은 책을 찾아 읽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닙니다. 의미 있는 책은 더욱 그렇습니다. 두껍고 어려우니까요.

이번 스페셜 리포트는 책에 관심은 있지만 너무 바빠 미처 챙겨보지 못한 분들을 위해 만들었습니다. 올 들어 9월까지 나온 14권을 다이제스트했습니다. 문화관광부 산하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선정한 '이 달의 읽을 만한 책'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던 도서들입니다. 서평이 아닌 요약입니다. 읽고 나면 책의 내용이 대충 손에 잡힐 겁니다. 도서요약을 맡아주신 ‘북코스모스’ 최종옥 대표에게 감사 드립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