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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귀엣말로 "금수산궁전 안 가셔도 됩니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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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호 08면

1차 남북 정상회담 이틀째인 2000년 6월 14일 평양 목란관에서 열린 만찬 도중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왼쪽)이 임동원 국정원장을 불러 귓속말을 나누고 있다. 이 장면은 국정원장의 처신 문제로 논란을 불러일으켰으나 두 사람은 김대중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문제를 매듭짓는 대화를 한 것으로 밝혀졌다. 중앙포토

◇금수산기념궁전 참배에 집착한 김정일=1차 정상회담 이틀째인 2000년 6월 14일 평양의 목란관(국빈 연회장). 김대중 대통령 주최의 답례 만찬이 열리고 있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김 대통령 옆자리에 앉았다. 만찬 직전에 열린 두 정상 간 회담에서 원칙 합의한 사항들을 마무리하는 자리였다. 임동원 국정원장은 만찬 전 남측의 공동선언 초안을 북측에 넘겼고, 북측은 만찬장으로 자신들의 안을 가져오도록 돼 있었다. 그 와중에 김 위원장이 임 원장을 불렀다. 김 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김 위원장이 임 원장에게 귀엣말을 했다(사진). 합의문 문제가 아니었다. “김 대통령이 금수산기념궁전에 안 가셔도 되겠습니다. 내가 지금 김 대통령을 (백화원 영빈관에서) 차로 모시고 같이 왔는데 ‘안 가셔도 됩니다라고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습니다. 임 원장이 이겼어요.” 국내에서 국정원장의 처신 문제로 논란을 부른 이 장면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문제 대화였다. 이 문제는 1차 회담 당시 남북 간 최대 막후 쟁점이었다. 남북 정상이 합의문(6·15 공동선언)에 원칙 합의한 후에야 매듭지어졌다. 남북 간 공방이 어떻게 진행됐기에 김 위원장은 임 원장이 이겼다고 얘기했을까.

임동원 前 국정원장이 공개한 1차 남북 정상회담 秘史

그 20일 전인 5월 27일. 임 원장은 김 대통령 특사로 방북했다. 정상회담 사전 협의차였다.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지난해 사망)이 임 원장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으로 찾아왔다. 임동옥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참배를 요구했다. 임 원장은 그 자리에서 “수용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임동옥은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장군님(김 위원장)을 만날 수 없다”고 되받았다. 임 원장은 ‘내 마음대로 결정할 사안이 아니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임 원장은 김 위원장은 물론 북측 카운터파트인 김용순 통일전선부장(대남담당 비서·2003년 사망)도 만나지 못하고 돌아왔다. 빈손 귀환이었다.

6월 3일. 임 원장은 다시 방북했다. 숙소는 전과 같은 백화원 영빈관. 수행원은 국정원 국장과 과장 두 명이었다. 임 원장은 이날 김 위원장을 만난다. 장소는 평양이 아니었다. 그날 오후 6시쯤. 임 원장 일행은 평양 북쪽의 순안비행장으로 가서 40여 분 동안 중형 비행기를 탔다. 내린 곳은 평안북도의 한 지역. 임 원장은 다시 승용차로 시골길을 달렸다. 오후 7시쯤. 임 원장은 김 위원장이 기다리고 있던 한 초대소(특각)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임 원장은 김 위원장과 만찬을 포함해 5시간 동안 면담했다. 라운드테이블에서였다. 남쪽에선 수행원 두 명이, 북측에선 김용순과 임동옥이 배석했다.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에 강한 집착을 보였다. 세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 주도면밀했다. 첫째는 “순안공항으로 김 대통령을 마중나갈 테니 같은 차를 타고 금수산기념궁전에 함께 들르자”고 했다. 임 원장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공항에 영접을 나가지 않고 금수산기념궁전 앞에서 김 대통령을 기다렸다가 함께 방문하는 안을 제시했다. 임 원장은 다시 거부했다. 김 위원장은 마지막 카드를 꺼냈다. 김 대통령 방북 둘째날로 예정된 정상회담 직전 방문하자고 했다. 김 위원장 얘기의 요체는 정상회담 전에 반드시 김 대통령이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과정에서 둘 사이에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요지 정리).

“한국전쟁의 앙금이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정상회담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논란을 부를 수 있는)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은 생략해야 합니다.”(임동원)
“안 된다고만 하지 말고, 되는 방향으로 합시다. 이것은 국가의전입니다. 월남 갈 때는 호찌민 묘소에도 가고, (서울 가면) 현충원을 가고, 미국에 가면 알링턴 묘지를 갑니다. 이곳에 오면 여기(금수산기념궁전)에 다 가는데 왜 안 된다는 말입니까.”(김정일)

“한국민들의 정서를 생각해야 합니다.”(임)

“그러면 우리 북조선 인민들의 정서는 생각하지 않겠다는 거요.”(김)

임 원장은 이 문제에 대한 김 대통령의 메시지를 전한다. 정상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검토해볼 수 있다는 안이었다. 정상회담의 성과가 중요하다는 얘기였다. 이날 면담에서 이 문제는 결론을 보지 못했고, 김 대통령은 6월 13일 평양에 도착한다.
6월 14일 오전 7시30분쯤 남측대표단 숙소인 백화원 영빈관. 임동옥 부부장이 임 원장을 찾아왔다. 그는 그날 오후 3시로 예정된 김 대통령-김 위원장 간 정상회담 전에 두 정상이 금수산기념궁전을 방문토록 하자고 했다.

“절대 안 됩니다.”(임동원)

“그러면 장군님께 보고를 못합니다.”(임동옥)

임 원장은 이런 상황을 대비해 미리 준비해간 메모를 꺼냈다. “내가 불러줄 테니 받아쓰시오.” 임동옥이 이 문제를 구두로 김 위원장에게 보고할 처지가 안 된다고 본 것이다. “금수산기념궁전에 가면 정상회담의 의의가 없어집니다. 우리 국내의 70%가 반대합니다. 국회가 여소야대인 상황에서 남북 경제협력에 합의해도 예산 승인을 받기가 어렵습니다.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양쪽을 위해서 이익이 됩니다….” 이 메시지는 임동옥을 통해 김 위원장에게 ‘건의서’형태로 보고됐다고 한다. 결국 정상회담은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없이 이뤄졌다. 그러나 방문 문제가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었다. 회담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검토할 수 있다는 것이 당초의 남측 안이었기 때문이다. 그날 저녁 목란관 만찬에서 김 위원장이 임 원장에게 “당신이 이겼어요”라고 한 것은 그 문제가 해결됐다는 얘기였다. 정부는 당시 두 사람의 귓속말이 국내에서 논란을 불러일으켰지만 회담 직후라 전모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한다. 임 원장은 “김 대통령의 금수산기념궁전 방문을 막은 그 장면은 역사적인 것으로서 지금도 자부심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순안공항에 도착한 뒤 트랩을 내려오기 전 정면이 아닌 다른 곳을 먼저 둘러본 것이 이 문제와 관련이 있다는 설에 대해선 “아무런 사전 협의도 없었고, 또 메시지도 없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2차 회담 과정에서 금수산기념궁전 방문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면 다른 행사에서 대체효과를 거두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을지 모른다.

◇김정일은 공동선언 서명 꺼렸다=6월 14일 남북 정상회담이 열린 백화원 영빈관. 남북 정상은 합의문(6ㆍ15 공동선언) 서명 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지를 놓고 공방을 벌였다. 김 위원장이 처음에 “수표(서명)를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서명 주체에 대해 첫 번째로 남쪽에서 임 원장이, 북쪽에서 김용순이 서명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상부의 뜻을 받들어’라는 구절을 넣으면 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김 대통령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김 위원장은 ‘김대중 대통령과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서명안을 내놓았다. 헌법에는 자신이 아니라 김영남 상임위원장이 국가를 대표하는 것으로 돼 있다고 했다. 김 대통령은 “안 된다”고 했다. 김 위원장은 세 번째로 아무런 직책을 명기하지 않고 그냥 ‘김대중과 김정일’로 서명하는 안을 꺼냈다. 역시 거부당했다. 이 문제는 결국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사진)로 매듭됐다. 서명 주체 부분은 2차 회담에서도 주목거리다. 북측은 6ㆍ15 공동선언을 남북관계의 장전(章典)으로 삼는 만큼 이번의 합의문을 그 후속으로 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정상회담 왜 하루 연기됐나=1차 회담의 당초 일정은 6월 12~14일이었다. 북측은 6월 10일 전화통지문을 보내 일정을 하루 연기하자고 제의했고, 남측은 이를 수용했다. 회담 일정 연기는 대북 송금이 지연됐기 때문이라는 얘기가 돌았다. 그러나 임 원장은 “말도 안 된다”고 일축했다. 6월 3일 김 위원장과의 다섯 시간 면담으로 미뤄볼 때 그의 경호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단정했다. 이 면담에서 김 위원장은 김 대통령의 서해 직항로 방문에 대한 남한 언론의 상세한 보도에 매우 불쾌해했다고 한다. 다음은 대화 요지.

“ㄷ자 항공로를 그려놓고 출발·도착시간까지 다 보도했는데 보안을 유지해야 하지 않습니까. 국가원수가 다니는데 방해책동을 하는 분자들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지 않습니까. 왜 그렇게 무책임합니까.”(김정일)

“그렇지 않습니다.”(임동원)

“회담을 하루 앞당기든지 하루 늦춥시다. 하루 이틀 전에 갑자기 그렇게 해야 (피해를 가하려는 자들이) 놀라서 어떻게 할지 모릅니다.”(김)

“회담 준비 관계상 앞당기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임)

임 원장은 “공항에서 김 대통령을 영접할 생각을 갖고 있던 김 위원장이 자신의 경호문제로 그런 반응을 보인 것으로 느꼈다”며 “회담 직전 연기 통보를 접하고 김 위원장이 공항에 틀림없이 나올 것으로 판단했다”고 말했다.(회담 연기에 대해선 2003년 6월 ‘대북 송금의혹 사건’ 특별검사팀도 경호상의 문제 때문이라는 수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김 위원장의 공항 영접은 당시 면담에서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다고 한다. 그가 “김 대통령이 오시면 공화국 역사 이래 최대의 환영행사를 해 드리겠다. 과거 장쩌민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왔을 때 최고로 해 드렸는데 그보다 더 성대하게 모시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장쩌민은 1990년 3월 방북했으며, 당시 순안공항에는 김일성 주석이 마중을 나왔고 50만 명의 평양 시민이 연도에서 그를 환영했다.

임동원 전 국정원장과의 인터뷰는 9월 30일자 중앙SUNDAY Special Report에 다른 주제로 소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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