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르망디상륙 50돌… 「가장 긴 하루」 기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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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만여 참배객 “D데이” 축제/19국수뇌 참가… 독·러는 초청안돼/참전 용사들 화려한 축포속 감회/노르망디지역 호화 별장촌 변신/미·영·불 달라진 국제위상 되씹어
세계 전사상 최대·최고의 작전으로 꼽히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개시일(D데이) 50주년을 맞은 프랑스의 서부 노르망디 지역은 참전용사와 참배객 등 전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10만여명의 인파로 축제무드가 절정에 달하고 있다.
44년 6월6일 새벽 개시된 이 작전은 미국·영국·캐나다 등 37만명으로 구성된 연합군이 나치 독일의 견고한 방어망을 뚫고 유럽해방을 가져온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로 해마다 성대히 기념식이 치러져 왔다.
D데이 50주년이 되는 올해에는 특히 프랑스의 프랑수와 미테랑 대통령과 빌 클린턴 미 대통령,엘리자베스 2세 영국여왕 등 19개국 수뇌들과 4만1천여명의 참전용사,3천여명의 취재진 등이 참가하는 최대규모 행사로 치러지고 있다.
해변을 따라 이어지는 마을과 도로는 새롭게 단장되고 호텔 등 건물마다 연합국 국기들이 게양돼 운동회를 연상케 한다. 초청된 참전용사들은 6일 새벽 5시50분부터 시작돼 이날 오후 9시까지 이어진 치열한 공방전 끝에 연합군만 2천5백명이 숨지고 1만여명이 부상을 입은 「가장 긴날」(The longest day)을 회고하며 감회에 어린 표정들이다.
전야제격인 5일에는 최초로 나치의 점령을 벗어난 망슈의 생트 메르 에글리즈에서 5백명의 미국 공수부대와 80명의 프랑스 공수부대가 60여명의 미국 참전용사와 함께 낙하시범을 보였다.
6일에는 망슈의 유타해변에서 공식 기념행사를 가지며,이날 밤 칼바도스의 수도 캉에서 모두 5만5천명이 평화를 위한 기념식을 통해 동맹의 끈을 확인한다.
상륙작전후 50년이 지난 노르망디는 파리지앵(파리사람들)의 호화판 별장이 들어서고 풍요로운 농업마을의 예전 모습을 완전히 되찾았다. 「철의 독일인」이란 구호가 적힌 독일군의 벙커는 관광지로 개조됐고 곳곳에는 박물관이 들어섰다.
그러나 겉모습처럼 노르망디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미국은 세계의 주도권을 잡은 날로,영국은 마지막 대영제국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날로,프랑스는 레지스탕스의 역할을 강조하며 통일독일을 견제하는 행사로 제각기 노르망디에 자리매김을 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엄연한 회원국인 독일의 헬무트 콜 총리는 점령국이었다는 이유 때문에 초청에서 제외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반세기동안 따돌림받아왔고 유럽 최대의 부국인 독일을 계속 격리시키는 것은 결국 독일을 또다른 국수주의속으로 몰아넣고 있다는 비판의 소리도 나오고 있다. 많은 러시아인들은 스탈린 그라드 전투에서 1백20만명의 희생자를 내며 2차대전후 연합군측에 최초의 승전을 안겨준 러시아가 초청되지 못한데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의 관계도 예전같지 않다. 유럽은 정치적으로 독주하고 있는 미국이 불쾌하고,미국은 유럽안보를 언제까지 짊어져야 하는가라는 불평을 표시하며 양측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에서 보듯 경제적 라이벌로 변했다.
프랑스의 일간 르 몽드지와 미국의 CNN이 공동으로 실시한 최근의 여론조사에서 프랑스인들은 미국의 참전원인에 대해 46%가 미국의 경제적·전략적 이해때문이라고 답한 것은 이같은 인식을 반영하고 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50주년은 평화와 동반자라는 표면적인 수사에도 불구하고 퇴색해가는 동맹의 의미를 확인하는 자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파리=고대훈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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