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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마아타/시의원 당선 이변(설땅없는 중앙아 한인들/현지르포:3)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민족차별 분위기에 “청량제”/대세는 못속여 자국 민족 편의 청탁 밀물/구심역 「고려문화협」 뿔뿔이 흩어져 명맥만
중앙아시아의 민족주의 바람은 사막의 폭풍 만큼이나 거세다. 그런데 금년 3월 카자흐 수도 알마아타시 시의원서너에서 「정치이변」이 발생했다.
39명 시의원 가운데 김레오니드씨와 유기이씨 등 두명의 한인(현지에서는 고려인으로 부름)이 당선돼 민족주의 바람을 무색하게 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한 김씨는 특히 카자흐인·러시아인·우크라이나인 등 모두 4명이 후보로 나선 가운데 투표자 1만1천명의 50%인 5천5백표를 얻어 압승했다. 유권자 2만명은 카자흐민족 30%,러시아민족 60%였으나 러시아인 후보는 4천표를,카자흐인 후보는 1천표를 얻었을 뿐이다.
김씨는 기자에게 『지역주민들이 잘봐줘 당선됐다』고 겸손해했지만 카자흐 한인들은 이들의 당선이 「카자흐」만을 고집하지 않는 카자흐 민족주의의 개방성과 한인의 높은 위상을 반영하는 것으로 당연하다는 반응이다.
○민족 인기 4위로
유씨는 특히 카자흐인 2명을 물리쳐 이곳의 분위기를 잘 말해준다. 확실히 알마아타 한인들은 큰 동요없이 전처럼 잘 살고 김씨와 같은 성공사례도 종종 나타날뿐 아니라 카자흐 민족과의 관계도 좋은듯해 보인다.
이 나라 최대신문 『카라반』 4월1일자 여론조사도 「카자흐민족이 같이 일하고 싶은 민족」에 한인이 10%선으로 4위에 꼽힌 내용을 보도했다.
카자흐 전체 한인(10만3천명)은 카자흐인구(1천6백만명)의 0.6%이고 알마아타시 인구(1백80만명)중 한인은 1%(1만8천명) 정도라는 점을 감안할 때 이같은 조사결과는 한인들의 원만한 민족관계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우즈베크의 한인들이 「우즈베크 언어사용」이라는 횡포앞에 전전긍긍하고 있는 것과는 확실히 처지가 다르다.
그러나 한인사회의 평온함 이면에는 한인사회의 기반이 잠식당하는 현상이 서서히 진행되고 있다.
카자흐인 밀집지구 구청의 경제부처 부장이었던 최료바씨(47)는 93년 5월 『카자흐말을 모르면 나가라』는 이유로 20년 이상 근무했던 직장에서 쫓겨났다.
김레오니드 의원이 시의원과 겸직해 교육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길리닌 라이온에는 카자흐인 4명,러시아인 3명,한인 1명의 부장이 있었으나 독립직후 러시아인은 모두 카자흐인으로 교체됐다.
중기계공장의 기사장 노중석씨(55)도 92년 12월 독립후 한동안 부하직원 3백명 가운데 15명의 카자흐인을 잘봐주거나 승진시키라는 압력과 청탁을 받고 시달린 경험이 있다.
무엇보다 카자흐 한인 1천명 이상이 모스크바에서 국적신청을 거부당해 우왕좌왕하고 있는 사례는 동요하는 카자흐 한인의 실태를 반영하고 있다.
고려일보 기자인 김세르게이씨(48)는 이같은 현실을 『새로운 지배민족이 한인기반을 잠식하는 보이지 않는 과정』으로 전달하고 있다.
구 소련체제 아래 나름대로 굳혀졌던 중앙아시아 도시와 농촌의 한인기반이 민족주의 돌풍 앞에서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음이 우즈베크에서도 한인들의 탄식속에 그대로 묻어나왔다.
○러 국적신청 거부
불안감이 떠도는 가운데 이주 1세대와 거의 민족성을 상실한 4,5세대를 제외하면 40∼50대의 2∼3세대 한인들은 어디론가 떠나야 한다는 강박관념으로 시달리고 있다.
카자흐 한인들은 우즈베크보다는 사정이 낫지만 앞날을 걱정하기는 마찬가지며 문제해결을 위해 어떻게 해야할지 방향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구 소련시절 한인의 구심점역할을 했던 고려문화협회는 이제 각 공화국으로 나뉘어 횡적 연결도 안된채 분열돼 지리멸렬하고 있다.
○고려일보도 축소
타슈켄트의 한인 사업가 김볼로다씨(33)는 『소련에 충실히 살아왔던 한인들이 민족에 대해 자긍심이 없기 때문』이라고 냉소하고 있다.
구 소련시절 레닌기치라는 이름으로 한인대변지역할을 했던 고려일보도 우편망의 붕괴와 화폐체계변동 등으로 더이상 구 소련 전지역을 망라하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
갑작스레 15개 공화국이 생기고 물가가 하늘로 치솟는 바람에 구 소련에 흩어져 살았던 한인들이 벌써 3∼4년씩 서로 못만나고 심한 경우 생이별하다시피 살아가는 고통을 받고 있다.
고려일보 정상진 논설위원(77)은 결혼한 두딸과 장모·처형이 각각 러시아·카자흐·우즈베크에 살고 있어 3년째 못만났을뿐 아니라 여행경비마련은 꿈도 못꾸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알마아타=안성규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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