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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지 못 받는 공산당 … "러시아 망쳐 놓았다" 시베리아서만 명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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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이날 광장에는 젊은이들이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동상 옆 계단을 오르내리며 놀고 있었다. 자칫 동상이 훼손될 수도 있었지만 누구도 나무라는 사람은 없었다.

모스크바에서 혁명 90주년을 축하하는 분위기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TV와 라디오 방송에선 12월로 다가온 총선과 내년 3월 대선을 둘러싼 전망과 분석이 주를 이룰 뿐 사회주의 혁명을 다루는 프로그램은 찾아볼 수 없다.

겐나디 주가노프 공산당수는 지난달 말 "11월 초부터 혁명 90주년 기념행사를 벨로루시의 수도 민스크에서 개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모스크바에서는 10월혁명 당일에 기념행진만 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혁명에 대한 러시아 여론의 냉담한 분위기를 반영한 결정이었다. 그는 10년 전 제정했던 공산당 강령을 시대 변화에 맞춰 개정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사회주의 상징물들을 완전히 철거하려는 움직임도 같은 맥락이다.

이미 자본의 맛을 확실히 본 러시아에서 공산주의는 더 이상 국민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택시기사 니콜라이(53)는 "모스크바나 페테르부르크 등 대도시에선 공산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시베리아의 지방 도시에서나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소련은 러시아 역사의 공백기"라며 "많은 사람이 레닌과 스탈린이 러시아를 망쳐 놓았다고 믿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년 전 러시아 정부가 아예 혁명 기념일을 없애버린 것도 이런 여론을 감안한 것이었다. 블라미디르 푸틴 대통령은 2004년 혁명 기념일을 국경일에서 뺐다. 대신 11월 4일을 '국민 단결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새 공휴일로 지정했다. 이날은 1612년 러시아가 폴란드 군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날이다. 이후 러시아에선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됐다.

모스크바=유철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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