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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동(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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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관료집단은 흔히 마차에 비유된다. 마부가 이끌어야 움직인다. 그런 의미에서 무사안일 내지 복지부동은 타고난 한 속성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관료의 타성을 주의깊게 관찰한 사람은 역시 영국 케임브리지의 역사가 노스컷 파킨슨이다. 작년 봄 83세로 타계한 그는 두개의 「파킨슨 법칙」을 남겼다. 1955년 이코노미스트지에 발표한 첫째 법칙은 「무슨 일이든 그 완성에 주어진 시한까지는 최대한 확대된다」였다. 미룰 수 있을 때까지 미루고 시한이 찰 때까지 엿가락 늘리듯 최대한 일을 끌어간다는 의미다.
2차대전 때 참모장교로 육군에 복무하면서 군조직이 스스로를 위해 자리와 일을 만드는데 그는 적잖게 충격을 받았다.
「관료조직에서 일은 끝없이 탄력적이다. 마감시한이 없으면 아무 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그는 경종을 울렸다.
두번째 법칙은 「지출은 세입에 맞먹을 때까지 계속 확대된다」였다. 현실적으로 세입을 능가했으면 했지 세입을 밑돌지는 않는다는 해석이다.
따라서 정부는 작을수록 좋고,「정부내의 절약이 첫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는 토머스 제퍼슨의 말을 그는 즐겨 인용했다. 또 「위원수가 21명이 넘는 위원회는 어떤 것이든 성공을 못한다」 「회의석상에서 발언자의 발언시간과 그가 지닌 지식은 반비례한다」는 법칙도 남겼다.
미국의 항공기 엔지니어였던 에드워드 머피가 1949년에 남긴 「머피법칙」도 곧 잘 들어맞는다. 「잘못될 소지가 있으면 일은 기어코 잘못 되어가고 만다」는 통찰이다. 마부의 역할은 갈수록 중요성을 더한다. 그러나 조직의 장이 한낱 「과객」으로 비쳐지는 상황에서 채찍질은 먹혀들리 없다.
관료주의를 뜻하는 영어의 「뷰로크러시」는 이제 관청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대기업·협회·단체·학교·병원 등 각급 큰 조직체의 조직병리와 타성을 꼬집는 부정적인 뉘앙스로 의미가 일반화된지 오래다.
IBM과 GM 등 세계 거대기업의 휘청거림도 기업내부의 경직화된 관료조직 때문이었다. 우리 모두가 크고 작은 관료체제에 젖어 사는 「뷰로크러시 시대」다. 복지부동이 관청에만 국한된 현상이라고 우긴다면 이는 자기 기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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