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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엔 방위병 밤엔 오렌지족/부모살해범(어떻게 자랐길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3면

◎힘든 보직바꿔 사회보다 편한 군생활/“지갑만 보여주면 여자 줄줄이” 자랑/부모는 엄했지만 돈이 방탕벽 조장
강남 한약업사 부부 살해·방화사건의 범인이 재산상속을 노린 장남으로 확인된 26일,자식 가진 부모들의 이구동성은 『도대체 성장과정이 어땠길래 그렇게 끔찍한 범행을 저지를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자수성가한 아버지 박순태씨(47)의 가정교육은 오히려 엄한 편이었고 자식교육에 대한 관심도 상대적으로 높았다. 그러나 박한상군(23)의 학창생활·군시절은 「공부는 하기싫고 돈은 많은」 전형적인 오렌지족이었다.
모교인 H고교에서 박군은 특별히 사고를 치거나 말썽을 부린적이 없어 그를 기억하는 교사는 거의 없었다.
『고교 2학년때 전학 왔지만 성격이 모나지 않고 단순했습니다. 친구들과도 사이가 좋았고. 공부를 싫어해 수업시간에 꾸벅꾸벅 조는 때가 많았습니다. 전자오락실에 자주 다니는 것 같았고….』 3학년때 담임 오모교사(40)의 말이다.
부모의 교육열은 상대적으로 매우 높았다. 『아버지는 한의학과를 원했지만 성적이 안됐어요. 지방 W대 화학과를 1지망,결국 토목과로 갔습니다. 아버지는 일단 졸업시킨 뒤 한의학과로 편입시키려고 했다는 기억입니다.』
지방 W대의 동창들중에서도 박군을 기억하는 학생은 많지않았다. 『강의시간에 거의 들어오지 않고 매일 놀러다녀 소문이 별로 안좋았습니다.』 동창 김모군의 말이다.
박군의 오렌지족 행각은 92년 1월 방위병에 입대하면서 극에 달한다. 몸무게 때문에 방위로 입대한 박군은 국방부로 배속받았고 처음엔 매우 힘든 보직인 식당근무를 시작했지만 「어찌된 일인지」 석달만에 가장 편한 보직인 화분(꽃) 담당으로 바뀌었다.
『처음 들어와 구보를 하는데 심장이 아프다며 항상 열외를 해 별명이 심장이었습니다. 멀쩡한 놈이 구보때만 되면 꾀병을 부리고,힘들고 어려운 일은 무조건 하기 싫어했어요.』 함께 군생활을 한 이모씨의 말이다.
「사회보다 편한 군생활」을 하며 박군은 저녁에는 압구정동·신사동으로 쏘나타승용차를 몰고 「출근」했다. 『동료들에게 항상 돈자량을 하고 여자들을 데리고 논 얘기를 떠벌렸습니다. 자기는 용모는 자신없지만 돈이 가득찬 지갑만 보여주면 여자들이 다 쫓아온다는 겁니다. 휴가때는 2백만∼3백만원을 썼다며 우쭐거리기도 했고요.』
박군의 오렌지족 행각은 결국 부모와 마찰을 불러일으켰다. 여자 2명을 데리고 포장마차에서 술을 마시다 도망쳐 아버지 박씨와 함께 경찰에 불려가 조서를 꾸미기도 했고,관계를 맺은 여자로부터 『돈을 주지 않으면 부모에게 나를 책임지라고 요구하겠다』는 협박을 받기도 했다.
『한상이가 서울근교의 아버지 별장으로 가 유서를 써놓고 동맥을 끊는 자살을 기도했지만 결국 무서워 못했다고 하더군요. 자기조절이 안되고 뒤죽박죽 살아간다는 느낌이었어요.』
1백억원대의 거부였지만 주위사람들로부터는 『인색하다』는 평을 듣기도 했던 가정. 자수성가하고 40대 중반에 대학원을 다시 나올 정도로 자기관리를 하고 자식교육에 열성적이었던 깐깐한 아버지. 잘사는 집에서 어려운 일이라고는 거의 해보지 않은채 흥청망청 압구정동의 환락에 빠져들었던 아들.
「어떻게 하는게 자식을 올바로 키우는 길인가」에 대해 기성세대 모두가 반성해 볼 때다.<김동호·신순봉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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