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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이 병만든다(특진 중병앓는 의료현장:16)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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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치료중 균감염… 숨져도 감추기 일쑤/손씻기등 기본만 지켜도 큰효과
심장수술을 받은 김모씨(40·여)는 수술 사흘뒤 열이 심하고 혈압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심장판막이 좁아져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는 「승포판 협작증」.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으나 왠지 후유증이 나타난 것이다. 검사결과는 황색 포동상구균 감염. 병원의 의료기기나 환자 접촉물에 흔히 붙어있는 세균이다. 온갖 항생제를 투여했지만 김씨는 수술후 20여일만에 숨졌다. 『수술도중 외부로부터 핏속으로 직접세균이 들어가 빠른 속도로 퍼진 것으로 보입니다. 일종의 병원감염이지요. 세균을 옮긴 것이 수술기구인지는 모르지만….』
이 병원 한 전문의는 『환자측이 알면 난리 날 일이지만 대부분 그냥 넘어간다』고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그는 또 이런 일이 의료현장에서 적지 않게 발생한다고 했다. 지난해 10월 서울 어느 대학병원에서의 일이다.
「병원이 병을 만든다.」
의원성질환(병원이나 의료인들로 인한 병 또는 장애)이 발생하면 의사나 보건학자들이 병원감염을 경고하며 흔히 쓰는 말이다.
병원감염이란 입원전엔 감염되지 않았던 사람들이 병원에서 미생물에 노출,감염되는 것. 환자·보호자·의료인 모두가 대상이다. 선진국들은 병원감염이 의료사고 보상과 연계되면서 이에 대한 중요성이 일찍부터 싹터왔다.
미국에서는 진료도중 에이즈환자들에게 감염되는 의료종사자들이 속출하자(81년부터 92년까지 69명 감염) 병원감염이 의료인들 사이에서 심각한 문제가 됐다.
우리나라는 아직 실태파악도 안할 정도로 병원감염에 대한 인식이 희박하다. 따라서 국내 의료기관들은 병원감염에 거의 무방비상태다.
전문가들은 선진국의 병원감염 관리 정도 등을 비교,전체 입원환자의 10% 정도가 병원에서 다른 병을 얻는 것으로 추산한다.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이 지난해 41개 종합병원을 상대로 조사한 결과 병원근무를 시작한후 간염에 걸린 의료종사자가 14%에 달했다.
서울 S종합병원 내과에서 현재 사용중인 위 내시경은 2대. 환자 한명당 10∼15분씩 하루 20∼30명을 검사한다. 한번 검진한뒤 소독기에 넣어 완전 살균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23분. 하지만 밀리는 환자들 때문에 식염수로 씻어내고 알콜솜으로 닦은두 2∼3분만에 다시 사용하고 있다.
만성 감염환자가 특히 많은 우리나라의 실정에서 위험천만한 일이지만 대부분 병원이 대동소이하다.
지난해 서울대 보건대학원 역학조사팀 조사결과 감염방지를 위해 일회용 종이 타월을 사용해 손씻는 곳은 1백30개 종합병원중 4곳 뿐이었다. 또 병원감염의 주요원인은 「항생제(메치실린) 내성 포도상구균」이 몸에서 나오는 장기이식 환자나 암환자 등을 격리하고 있는 병원은 18곳(13.8%)에 불과했다.
전문가들은 ▲면역기능이 약한 노인인구의 급증 ▲면역성을 약화시키는 면역억제제 투여 ▲세균감염 기회가 높은 내시경 진료 증가 등으로 인해 앞으로 병원감염이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보사부는 92년 6월 80병상 이상의 모든 병원은 병원감염관리위원회를 설치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그러나 전담 감염관리사를 둔 의료기관은 서울대병원·서울중앙병원·신촌세브란스병원·고대 구로병원 등 몇군데뿐으로 그나마 한명씩이다. 그중에서도 항목별로 병원감염 관리지침서를 마련하는 등 제대로 활동하는 곳은 서울대병원뿐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은 모든 종합병원이 감염관리사(환자 2백50명당 1명)·감염전문의·임상미생물전문가·병원역학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감염관리위원회 설치가 의무화되어 있다. 이와함께 미국질병통제센터(CDC)에서는 병원감염 예방을 위한 지침을 제정,병원들이 이를 지키도록 강제하고 있다.
이밖에 의료 선진국들은 ▲병원 건축 ▲의료기기 제작 ▲질병통제 집계 등의 과정에 반드시 병원감염을 고려하도록 유도한다.
우리나라는 병원감염 부분이 걸음마 수준이므로 기본적인 체계만 갖추어도 전체 감염의 3분의 1 정도는 줄일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진단. 우선 손씻기·소독·주사놓기부터 병원관리지침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종합병원만이라도 감염관리사 등 전문전담인력을 두어 감염관리위원회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치료하러 간 병원에서 엉뚱한 병을 얻는다면 환자와 의료기관 모두 피해자라는 인식을 갖고 정부·의료계가 보다 적극적인 대책을 세워야 할 때다.<조현욱·안혜리기자>
◎병원감염 예방수칙/서울대병원 감염관리위 마련
병원감염을 막기 위해 서울대병원 감염관리위원회는 일반인이 병원 출입때 지켜야 할 10가지 행동수칙을 제시했다.
①환자방문전 반드시 손을 닦는다.
②환자의 물건은 삶거나 햇볕에 말려 소독한다.
③환자의 쓰레기는 비닐 색깔별로 구분된 오염쓰레기통에 버린다(일 반 흑색,주사기 등 청색,솜 등 소각대상물 적색).
④오염가능성이 큰 처치실에는 절대 출입하지 않는다.
⑤어린이는 감염이 잘되므로 병원안에 데려가지 않는다.
⑥호흡기 환자 등의 병실에는 꽃·화분 등을 반입하지 않는다.
⑦감기 걸린 사람은 면회를 삼간다.
⑧수인성 질환 예방을 위해 음식물 반입을 자제한다.
⑨암병동·중환자실·전염병동 등이 면회때는 병원규칙에 정한 가운· 슬리퍼를 착용한다.
⑩면회는 가능하면 짧게 한다.
□도움말 주신분
▲유석희 중앙대 용산병원 내과과장
▲윤용범 서울대의대 내과교수
▲김우주 고려대의대 감염내과 교수
▲변철식 보사부 의료관리과장
▲오향순 서울대병원 감염관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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