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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끼리 너무합니다/통행로에 말뚝·철조망 “웬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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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16년간 다닌 길인데 이럴수가/이웃/연립주택 마당이 지름길이냐/땅주인/서울지법 교통방해죄 적용 벌금형
서울 관악구 신림2동 105 언덕빼기에 나란히 서 있는 백오연립과 평화연립주택 사이 골목길에는 쇠말뚝과 철조망이 둘러쳐진 「철판장벽」이 1년6개월째 흉물스런 모습으로 드러누워 주민들의 통행을 가로막고 있다.
같은 건축주에 의해 75년 나란히 세워진 두 연립주택 34가구는 지난 20년동안 「누구네집 부엌 간장종지 수까지 훤히 알」만큼 화목하게 지내온 이웃사촌들. 그러나 이제 「이웃사촌」은 옛말이 된지 오래다. 비록 15평 연립주택의 빠듯한 살림살이에도 서로 이해하고 도와가며 오순도순 살아오던 이들 이웃간의 정리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92년 11월 「백오」주민 15가구가 낡은 집을 헐고 재건축을 시도하면서부터.
이들은 지적도상에 자신들의 공동소유로 돼있는 폭 4m의 골목길을 재건축 부지에 포함시켜 설계도면을 작성했으나 통행권을 빼앗길 위험에 처한 「평화」주민들의 반대에 부닥치자 백응기씨(58)씨 등 「백오」주민들이 골목길 세곳에 쇠말뚝을 박고 길을 폐쇄해 버렸다. 이에 따라 「평화」주민과 인근 단독주택에 사는 2백여가구의 주민들은 20여년간 지나다니던 지름길을 눈앞에 두고 동네를 한바퀴 돌아가야 하는 불편을 겪기 시작했다. 이웃 주민들은 『아무리 이 땅이 사유지이지만 백씨 등 주민들이 16년동안 도로로 사용해온 관례를 무시하고 통행을 방해해 몸싸움까지 벌였다』며 『길이 막혀 동네를 한바퀴 돌아다녀야 하는 것은 물론 쓰레기차도 골목에 들어오지 못해 불편이 크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백씨 등은 『이 도로는 일반인의 통행로가 아니라 연립주택의 마당일 뿐』이라며 『다른 도로가 있음에도 이웃주민들이 지름길이라는 이유로 통행하려는 것은 오히려 잘못』이라고 팽팽히 맞서왔다.
더구나 이모씨(49) 등 인근 주민들이 강력히 항의하자 백씨 등은 아예 철조망을 치고 육중한 철판장벽을 쳐 대치했고 이후 쇠말뚝이 박히고 뽑히는 사태가 여러차례 반복된 뒤 감정의 골이 깊어지자 이웃주민들은 지난해 10월 백오연립주택 주민들을 고소하기에 이른 것.
이들은 서울민사지법에 통행금지가처분 신청을 냈다가 법원으로부터 기각판결을 받기도 했다. 서울형사지법 10단독 홍경호판사는 21일 백씨(58) 등 「백오」주민 15명에 대해 일반교통방해죄를 적용,각각 20만원씩의 벌금형을 선고하기에 이르렸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비록 이 도로가 피고들의 소유라 할지라도 주민들이 16년간 아무런 문제없이 이용한 도로를 자신들의 땅이라는 이유로 무단폐쇄한 것은 사회상규에 어긋난 위법행위』라고 밝혔다.
아무튼 백씨 등은 이웃주민들의 고소로 약식기소돼 5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받고 지난 2월 정식재판을 청구한 결과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다.
그러나 쌍방이 폭행혐의로 맞고소한 상태인데다 민사소송도 제기돼 있어 「이웃사촌」간의 낯뜨거운 법정종사는 당분간 멈추지 않을 전망이다.<예영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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