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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파벌정치 6년 만에 부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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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일본 정가의 오랜 관행이었던 '파벌 정치'가 6년 만에 되살아났다. 자민당 9개 파벌 가운데 8개 파벌이 한데 뭉쳐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71.사진) 전 관방장관을 총리후보로 지지하면서 과거의 '밀실 정치'가 부활한 것이다.

파벌정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에게 총리 자리를 물려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의 리더십에 눌려 그동안 자취를 감췄다. 하지만 아베의 사임을 계기로 자민당의 구심점이 무너지면서 다시 등장했다.

아베가 12일 갑자기 사임을 발표한 이후 국회의원 회관이 있는 도쿄 중심부 나가타초(永田町)에는 파벌 간 합종연횡이 빠른 속도로 일어났다. 아베 정권과 거리를 두고 있던 후쿠다를 차기 총리로 옹립하기 위해서였다. 선봉에는 최대 파벌인 '마치무라(町村)파'의 좌장인 모리 요시로(森喜朗) 전 총리가 섰다. 모리가 순식간에 '고가(古賀)파'와 '야마사키(山崎)파'를 끌어들이면서 대세는 후쿠다로 기울었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총리를 내려고 준비했던 '다니가키(谷桓)파'가 백기를 든 데 이어 다른 군소 파벌도 속속 '후쿠다' 깃발 아래 모여들었다. 오랫동안 총리 배출의 꿈을 꿔온 제2 파벌 '쓰시마(津島)파' 역시 누카가 후쿠시로(額賀福志郞) 재무상을 내세우려 했던 카드를 포기해야 했다. 나머지 1개 파는 23일 후쿠다와 결전을 앞둔 아소 다로(生太郞.67)가 이끄는 소규모 파벌이다.

파벌 부활 배경에 대해서는 고이즈미와 아베를 통해 선보인 급진적 개혁이 반작용을 낳았다는 분석이다. 지난해 9월 아베가 총리에 취임한 이래 소비세.공공사업 등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주는 개혁이 이어지자 자민당 내부에서도 "너무 빠르다"는 우려가 나왔다. 이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파벌 수장들은 이를 계기로 물 밑에서 '아베 축출'을 위한 기회를 모색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배경에 힘입어 후쿠다는 소속 의원 387명 가운데 55%에 달하는 213명의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요미우리(讀賣)신문은 분석했다. 아소 지지는 12%인 45명에 그쳤다. 아베의 후계자로 총리 바통을 이어받을 것으로 보였던 그가 참의선 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과 함께 파벌정치의 벽 앞에 꿈을 접어가고 있는 셈이다. 파벌정치의 결속력은 강하지만 문제점도 많다. 이미 일부에서는 간사장을 비롯한 요직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내부 반발도 적지 않다. 젊은 의원들은 "정견을 들어보기도 전에 후보를 결정하는 것은 낡은 방식"이라는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파벌정치를 통해 총리 공백이란 혼란은 수습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내부 잡음이 적지 않은 것이다. 외부의 시선도 곱지 않다. 특히 정권교체를 추진하는 민주당은 "자민당의 구태 정치가 되살아났다"며 중의원 해산을 더욱 큰 목소리로 요구하는 등 공세에 나서고 있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파벌정치=1955년 옛 자유당과 옛 민주당이 보수연합을 통해 자민당을 출범시키면서 시작됐다. 보수의 본류인 자유당 계열에는 이케다파와 사토파가 원류였고, 민주당 계열에는 후쿠다파와 고노파.미키파가 있었다. 현재 9개 파벌도 모두 이들 원류에서 계보를 이어받고 있다. 파벌의 보스가 지역구 공천권과 당내 인사권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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