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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빠른 살림꾼들의 보물찾기 산책

중앙일보

입력

아침저녁으로 열심히 걷기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 그 모습이 천태만상이다. 음악을 들으며 감상적으로 걷는 이가 있는가 하면, 팔을 마구 휘저으며 자유롭게 걷는 사람, 고함을 내질러 속을 풀어주는 사람, 뒤통수에 눈이 달린 듯 거꾸로 걷는 사람 등 저 마다의 삶만큼이나 가지각색이다. 하지만 모두 걷기라는 주제 속에서 자신만의 건강일지를 꾸준히 작성하는 유쾌한 사람들이다. 그런데 이들 틈에서 수상한 행동을 일삼는 무리가 있다. 운동복 차림으로 동네 공원이며 학교 운동장을 걷는 것은 별반 다를 것이 없지만 산책로까지 가는 과정이 남들과 확연히 다르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수시로 두리번거린다는 점이다. 대문을 나선 순간부터 골목을 벗어나 도로를 건너고 이웃동네를 지나칠 때까지 집요한 두리번거림은 계속된다. 게다가 자신이 선호하는 특정 장소를 반드시 확인하고 지나간다는데…. 여기서 ‘특정 장소’라 함은 아파트 단지 뒤편의 허름한 공터라든가 남의 집 울타리 모퉁이 등을 말한다. 수상하지 않은가?
산책로에 진입해서도 이들의 남다른 행동은 계속된다. 행인들의 발길에 차이는 빈 깡통이나 그 용도를 알 수 없는 각종 쓰레기들이 그 수상한 손들에 의해 수거된다. 그렇다면 혹시 쓰레기 줍는 사람들? 정답은, ‘그렇다’ ‘그렇지 않다’ 모두 맞다. 쓰레기를 줍긴 줍되 그 목적이 특별하기 때문이다.
이들의 정체는 바로 리폼 마니아다. 틈날 때마다 사방을 살피고 다니며 리폼 재료 공수에 열을 올리고, 간단한 공구와 재료만 있으면 프로 디자이너 못지않은 기량을 발휘하는 리폼 선수들. 그러니까 산책길에서 이들의 분주한 두리번거림은 리폼 작업의 일부인 셈이다.

리폼 세계에 푹 빠져 있는 경기도 고양시의 박보영 씨(32세). 맨 처음 길에 버려진 폐가구들을 집안으로 들이기 시작했을 때 가족들의 원성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손수 만든 가구와 소품으로 집안을 가득 채우고 나니 가족들의 태도가 백팔십도 달라졌다. 남편은 이제 운동을 나설 때마다 리폼 재료를 물색하는 일에 아내보다 열심이다. 그저 쓰레기로 보였던 폐가구들이 아내의 손길만 닿으면 세상에서 하나뿐인 명품가구로 탄생되니 길에 널린 폐품들이 이제는 죄다 보물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런 남편이 얼마 전에 주워온 괘종시계를 거실의 작은 벽장으로 변신시킨 박씨. 생선궤짝이며 버려진 탁자, 의자 정도는 몇 시간 안에 뚝딱 해치울 수 있지만 어쩌다 쓸 만한 장롱이라도 발견한 날에는 몇날 며칠을 매달려야 하니 이쯤 되면 취미생활 이상이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리폼의 매력에 빠져들기를 바란다는 박씨는 쓰레기 취급을 받는 물건들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재탄생했을 때의 보람을 강조하며 리폼 예찬에 공을 들인다.
“예쁘게 꾸민 집에서 생활하며 여행까지 즐기는 저를 보면서 종종 돈 많은 사람이라고 부러워들 하죠. 실상은 그렇지 않은데. 오히려 당장의 생활비조차 없어서 난감할 때도 있는걸요.”


눈앞의 생계에 급급해 살아가기보다 뭐든 좋아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면 길이 열리게 돼 있다는 것이 박씨의 철학이다.
“힘들고 지칠 때 일수록 배낭여행을 즐기고 더 좋아하는 일에 몰두하죠.”
단순한 생활에서 새로움을 찾을 줄 아는 박씨의 창조정신이야 말로 살림꾼들의 마음을 쏙 빼앗는 리폼세계의 참 매력이 아닐까.
그녀가 초대하는 리폼 세계로 입문하는 가장 빠른 길은 관련 블로그나 카페에 가입해 쉬운 작업부터 시도해 보는 것이다. 드라마 속에나 나올법한 독특하고 아름다운 인테리어, 길거리에 버려진 폐 가구를 직접 변신시켜본다면 당신도 얼마든지 소유할 수 있다.

설은영 객원기자 skrn77@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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