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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연의IN-CAR문명] 차로 남자를 파악할 수 있을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경제 15면

제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은 20, 30대 결혼 적령기의 청취자들이 즐겨 듣습니다. 그러다 보니 올라오는 사연이 남녀 간의 문제와 관련된 것이 많습니다. 특히 여성 청취자들의 사연 중엔 자동차와 남자에 얽힌 얘기가 많습니다. ‘여자가 데이트를 위해 세수를 할 때, 남자는 세차를 한다’는 식의 고전적인 얘기를 한 뒤 이런 질문을 합니다. “차로 남자를 파악할 수는 없을까요?”

 실제로 자동차로 남자를 판단하려는 시도는 많았습니다. 독일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의전차량으로 50여 년간이나 관례였던 벤츠 대신 아우디를 선택했을 때 독일인들 사이에 이런 말이 나돌았답니다. 네 번이나 결혼한 경력에 빗대어 아우디의 심벌인 4개의 원이 그의 결혼식 반지 개수라는 것이지요.

 자동차는 메이커마다 나름의 특징이 있어서 어떤 메이커를 좋아하는지로 운전자의 성향을 파악할 수 있겠다 싶더군요. 물론 운전 습관까지 감안하면 ‘남자와 자동차의 역학 관계’에 관한 이론 하나쯤 만들 수 있을 것 같더군요. 그래서 한동안 제 주변 사람들의 자동차 선호도와 습관을 보며 일반화할 만한 것들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찾아낸 결론은 엉뚱하게도 이런 겁니다. 어떤 사람이 평소에 보이는 모습, 또는 ‘그 사람’ 하면 딱 떠오르는 이미지하고 그 사람이 택하는 자동차 이미지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차와 인간의 부조화’라고나 할까요.

 사진작가 강영호는 차 안이 지저분하기로 소문났습니다. “그래, 예술가의 차는 지저분한 거야”라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곧바로 이 이론을 수정하게 만든 이가 나타났습니다. 화가 정효만은 2001년식 CLK 수동을 출고 상태보다 더 새 차처럼 아름답게 관리하며 타고 다니는 게 아니겠어요? 세상사에 집착이라고는 없어 보이는 가수 신해철은 1997년에 구입한 링컨타운카를 20만㎞ 넘게 타고도 폐차하기 싫다며 지하에 세워두고 매일 쳐다보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합니다. 왠지 고풍스러운 올드카를 몰 것 같은 재즈피아니스트 김광민은 아직도 ‘뚜벅이’입니다. 택시를 하도 많이 이용해서 말로 길을 설명하는 데 따를 자가 없습니다.

 여자들의 하소연도 바로 이런 데서 나옵니다. 차와 성품 간의 상관관계가 일관성 없는 데다 차와 관련해선 평소와 다른 모습이 돼 버리는 남자들을 이해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상냥하고 배려가 깊은 사람인데 차 안에선 과자도 못 먹게 해요.”

 “제 남편은 차를 새로 구입한 날에도 중고차 사이트를 보네요.”

 “평소 어른들한테 깍듯한데 운전만 하면 나이 많은 분들한테 욕설까지 해요. 잠재된 폭력성일까요?”

 “새 차라고 신발을 벗고 타라고 해서 그냥 와버렸어요.”

 “타이어 바꾸고 나니 코너링이 달라졌다며 코너를 돌 때마다 물어봐요. 전 그게 그거 같은데.”

 왜 남자들은 차에 관해선 이렇게 모순덩어리일까요. 저도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다만 ‘자동차는 남자들의 장난감’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장난감 앞에선 누구나 동심으로 돌아가죠. 자동차와 관련된 특이한 습관들이 ‘그 남자의 동심이 아닐까’ 하고 이해해 버리면 언짢은 일이 줄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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