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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 기부 ‘개미군단’ 2년 새 6만 명 늘어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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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06면

● SC제일은행 지점장 조경제(43)씨는 5년 전부터 매달 월급에서 5000원을 기부한다. 이 돈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로 가서 불우이웃을 돕는 데 쓰인다. 조씨는 수시로 희귀병이나 개안(開眼) 수술을 앞둔 어린이에게도 치료비를 내놓는다. 조씨는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사회에 환원하고 산다는 마음으로 기부한다”고 말한다. 조씨뿐만 아니라 이 은행 직원들의 대부분이 자율적으로 월급여의 일정액을 기부하고 있다.
● 국내 굴지의 재벌 2세인 A사장은 4년째 매년 거금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내고 있다. 그것도 익명으로. 어떨 때는 5000만원, 어떨 때는 9800만원을 낸다. 그는 매번 “내가 돈을 내는 사실을 절대 알리지 말아 달라”고 모금회 측에 신신당부한다고 한다.

달라지는 기부문화

국내 기부문화의 변화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 몇 년 사이에 보통사람들이 정기적으로 소액의 돈을 내는 ‘개미군단’ 기부가 크게 늘고 있다. 또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지 않는 익명 기부자도 많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따르면 최근 3년 사이에 개인 정기기부자(1년에 네 번 이상 기부하는 사람)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 2004년 18만1000명, 2005년 21만2000명에서 2006년 24만8000명으로 늘었다.
월급에서 일정액을 자동이체하는 방식으로 기부한다. 우리은행·기업은행·코스트코코리아 등이 몇 년째 계속하고 있고, 올 들어 한국문화콘텐트진흥원·전북도청·정읍시청·공주시청 등이 시작했다. 이런 기업·기관들은 직원의 80%가량이 자발적으로 월 5000~5만원가량을 정기적으로 기부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홍보팀 김효진 차장은 “정기기부자 중에서 40대 직장인이 가장 많으며, 좋은 일을 남모르게 하는 전통 때문에 익명 기부자가 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익명 기부자의 특징은 60대 이상 노인, 500만원 이상의 고액을 내는 사람이 많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기부 사실을 공개할 경우 취소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32% 기부 경험
한국인은 얼마나 기부를 하고 있을까. 금액은 얼마나 될까. 중앙SUNDAY는 △통계청의 2006년 사회통계 조사 △최대 법정모금기관인 사회복지공동모금회(회장 이세중 변호사)의 모금 실적 △아름다운재단 여론조사(2006) 등을 분석해 한국인의 기부 트렌드를 짚어봤다.
한국인은 대략 열 명 중 세 명꼴로 기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전국 15세 이상 성인남녀 7만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다.
이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한 해 동안 기부금(후원금)을 낸 사람은 31.6%. 40대, 대졸인 사람과 월평균 소득 400만원 이상인 가구에서 기부를 많이 했다.
지난 6월 공개된 인디애나대학 자선센터 부설 ‘기빙 유에스에이’ 재단의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개인 기부 비율은 75.6%였다. 우리나라 개인 기부가 늘고 있다고 하지만 아직은 미국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셈이다.
 
4년 만에 두 배 늘어
통계청 조사에서 한국인의 기부 횟수는 연평균 1.5회였다. 아직은 정기기부자보다 일회성 기부가 많다는 뜻이다. 기부를 할 때는 많은 사람이 사회복지단체(43.3%)를 택했다. 다음은 언론사(25.6%), 종교단체(25.1%), 직장(13.5%) 순이었다. 대상자에게 직접 줬다는 사람은 12.2%였다.
기부 규모도 커지고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부설 나눔정보센터에서 조사한 2005년도 국내 17개 주요 기관의 모금 총액은 약 4424억원. 2004년은 3099억원이었는데 한 해 사이 1000억원 이상 늘었고 4년 전에 비해 약 두 배가 증가했다.
조사대상 기관은 사회복지공동모금회·대한적십자사 등의 법정모금기관, 한국복지재단·월드비전·아름다운재단 등 민간모금기관, 전국재해구호협회 같은 협의체 등이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부액이 가장 많다. 모금회에 기부한 돈은 1999년 213억원에서 시작해 2005년 2000억원을 돌파했다.
이 기간 동안 개인이 기부한 돈은 네 배, 기업이 기부한 돈은 20배 늘어났다.
 
기부는 기업의 4분의 1
기부가 확산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개인 기부 비율은 기업에 크게 못 미친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기부현황 자료에 의하면 2006년 모금액 2177억원 가운데 개인이 낸 기부금의 비율은 16%(348억원)다. 반면 기업은 67%(1458억원)에 달했다. 삼성·LG·현대차 등 대기업들의 기부가 모금액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미국·일본 등 선진국은 다르다. 미국은 개인 기부의 비율이 기업보다 네 배 정도 높다. 우리와 정반대다. 일본은 개인 89%, 기업 11%다. 한국인의 개인 기부 비율은 홍콩·대만·싱가포르보다 낮은 편이다.
기부 금액 면에서도 선진국보다 매우 낮다. 아름다운재단이 2005년 전국 성인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평균 7만원을 기부했다. 이는 2003년(5만7859원) 조사보다는 늘어난 금액이다. 미국은 지난해 국민 한 명이 92만원씩 기부했다.
다만 ‘향후 1년 안에 기부할 의향이 있느냐’는 물음에 국민 75%가 ‘있다’고 답해 기부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은 크게 늘어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동기는 동정심
아름다운재단이 기부자들을 대상으로 기부 동기를 물었더니 ‘동정심’을 꼽은 사람이 60.2%로 가장 높았다. ‘나눔을 실천하는 가족의 전통과 문화’(41.9%)를 든 사람이 다음이었다. 이어 ‘사회에 대한 책임감’(40.1%), ‘개인적인 행복감’ ‘종교적 신념’(16.8%) 순으로 나타났다(중복응답 허용).
동정심보다 사회적 의무감에 의한 기부가 많은 선진국과 대조적이다.
기부한 적이 없는 사람들은 주로 ‘기부에 대해 관심이 없어서’(24.6%)라거나 ‘소득 감소 등 현재 경제적 여유가 없어서’(19.0%)라고 답변했다. ‘요청을 받은 적이 없어서’(13.3%), ‘기부 대상자·기부를 요청한 기관을 믿을 수 없어서’(8.9%), ‘어디에 어떻게 기부하는지 몰라서’(8.3%)라고 답한 사람들도 있었다.
 
돕고 싶은 대상 1순위는 불우아동
아름다운재단 조사 결과에 따르면 기부자들은 돈을 써야 할 대상으로 소년·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 등을 돕는 ‘아동복지 지원’(55.5%)을 꼽는 사람이 가장 많았다. 다음은 ‘빈곤가구 지원’(45.8%), ‘노인복지 지원’(43.6%), ‘장애인 복지지원’(43.3%), ‘재난·재해 등 긴급구호활동 지원’(40.8%) 순이었다. ‘국내 외국인 근로자 지원’(0.9%), ‘정당 및 정치단체 지원’(0.6%), ‘북한동포 지원’(0.6%) 등을 꼽은 사람은 극히 적었다. ‘교육 및 연구활동 지원’(6.3%), ‘환경 및 동물보호’(4.4%), ‘선교’(3.1%), ‘문화 및 예술분야 지원’(2.6%), ‘해외 구호활동 지원’(1.9%) 분야도 비교적 낮게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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