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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시아 중시로 급선회 예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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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호 02면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 전 관방장관(가운데)이 15일 공고한 집권 자민당 총재 선거 입후보를 선언한 뒤 지지자들과 함께 불끈 쥔 주먹을 들어올리고 있다. 총재 선거에는 아소 다로 간사장도 출마했으나 후쿠다의 당선이 확실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 [도쿄 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의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ㆍ71) 전 관방장관이 지난 12일 사임을 표명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겸 자민당 총재의 후임으로 선출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집권 자민당 마치무라파 소속인 후쿠다는 총재 선거를 공고한 15일 현재 전체 9개 파벌 가운데 8개 파 소속 의원 대부분의 지지를 얻어 함께 출마한 아소 다로(66) 간사장을 압도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들은 전했다(그림 참조). 자민당 총재선거 투·개표는 23일로, 이들 두 명만 출마했다. 투표자는 자민당 중ㆍ참의원 의원 387명과 47개 도도부현(都道府縣) 대표 각 3명을 합친 528명. 후쿠다는 이 가운데 의원 지지만으로도 절반(265표)을 넘는 300표 가까이 확보했다는 보도다. 이변이 없는 한 후쿠다의 총재 선출은 굳어진 셈이다. 자민당은 총리 지명의 우선권이 있는 중의원에서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고 있어 총재는 자동적으로 총리가 된다. 국회의 총리 지명선거는 25일께다.

새 총리에 東아시아 통합론자 후쿠다 前 관방 확실 … “야스쿠니 참배 않겠다”

후쿠다가 새 총리에 오르면 일본의 대외정책은 큰 변화가 예상된다. 그는 동아시아 통합론자다. 지난해 인도네시아에 들러 ‘신 후쿠다 독트린’을 밝혔다. 이 독트린은 아버지인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ㆍ사망) 전 총리가 1977년 공표한 동남아 외교 3원칙.

①군사 대국화하지 않는다 ②마음과 마음으로 교제하는 상호 신뢰관계 구축 ③동남아국가연합(아세안)과의 대등한 협력이다. 후쿠다는 이를 넘어 동아시아 공동체를 지향하겠다는 입장이다.

그의 이런 인식은 일본 외교의 향방을 바꿀 가능성이 크다. 2001~2006년 집권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외교는 ‘통미입아(通美入亞)’였다. 대미 관계의 프리즘을 통해 아시아를 봤다.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극단적 밀월과 야스쿠니 신사 참배는 그 전형이었다. 아베 외교는 그 아류에 지나지 않았다.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NCND(긍정도 부정도 않는다)로 한ㆍ중과의 마찰은 피했지만 미국 추종외교의 근간은 바뀌지 않았다. 그가 내건 ‘가치관 외교’는 미국ㆍ인도ㆍ호주와의 연합을 통한 대중국 포위망의 인상도 풍겼다.

후쿠다는 이런 노선과 결별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그도 미·일 동맹이 일본 안보의 기축이라는 입장이다. 그러나 아시아도 중시하는 정책으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그는 14일 TV에 나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대해 “틀림없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15일 회견에선 이 문제를 묻는 기자에게 “당신도 친구가 싫어하는 것은 하지 않을 것이지요”라고 했다. 야스쿠니 참배 문제로 동북아 3국이 과거사의 회오리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한국·중국과 싸워 좋을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고 한다(니혼게이자이). 특히 중국과의 관계강화에 주력해 왔다. 후쿠다는 현재 베이징 올림픽을 지원하는 일본 의원 모임의 부회장이다. 후쿠다는 현행 평화헌법 개정에도 소극적이다.

그가 집권하면 일본의 대북 정책도 유연해질 것 같다. 대화와 압박 간 균형을 취할 것이란 분석들이다. 후쿠다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문제에 대해 “시종 냉담한 태도를 취해왔다”고 납치피해가족회는 밝히고 있다. 이 문제를 대북 정책의 우선순위로 삼은 아베 총리와는 큰 차이가 난다. 일본의 대북 압박 완화는 6자회담 합의사항 이행에 탄력을 높여줄 수 있다.

후쿠다는 17년간의 샐러리맨 생활을 거쳐 77년 총리이던 아버지의 비서관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총리에 오르면 일본 헌정사상 처음으로 부자 총리가 탄생하는 셈. 54세이던 90년 중의원 의원에 처음 당선된 이래 6선이다. 외무성 정무차관, 자민당 외교부장을 거쳐 모리 요시로(森喜朗)ㆍ고이즈미 내각에서 관방장관을 맡아 최장수(1289일)를 기록했다. 각료 경험이 없는 그가 내각의 넘버 2인 관방장관에 발탁된 것은 일본 정치에서 일대 파격이었다. 관방장관 때는 일본 외교를 주도해 ‘그림자 외상’으로 불리기도 했다. 저서로는 『한 나라는 한 사람으로 흥하고, 한 사람으로 망한다』가 유일. 후쿠다가 책을 통해 공표한 심판대에 오를 날이 머잖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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