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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핵연료봉 도박(사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사찰이 입회하지 않은 상황에서 북한이 끝내 원자로의 핵연료봉 교체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오랫동안 쟁점이 됐던 영변의 방사화학실험실에 대한 추가사찰 등 후속사찰에 합의해 모처럼 새로운 단계의 대화가능성이 모색되는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행동이다.
북한의 이러한 행위는 북핵문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IAEA와 미국 등 상대방들을 혼란에 빠뜨려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겠다는 속셈에 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보다는 위기를 촉발할 수도 있는 지극히 위험한 도박이라는 점에서 크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 등 국제사회는 이미 여러차례 북한에 대해 일방적으로 연료봉 교체를 강행하면 대화를 중단하고 유엔안보리를 통한 제재에 나서겠다고 경고해왔다. 따라서 연료봉 교체를 시작했다는 북한 당국자의 IAEA에 대한 통고가 본격적인 교체의 뜻을 담고 있다면 제재는 불가피해지고 한반도는 그만큼 불안정한 상황에 빠지게 될 것이다.
북한이 방사화학실험실에 대한 추가사찰에 동의함으로써 IAEA 사찰팀이 방북,17일부터 사찰활동을 재개하게 되면서 자그마한 돌파구라도 마련될지 모른다는 기대를 우리는 가져왔다. 그런 기대는 북한이 연료봉 교체를 늦추고 미국과의 3단계 회담에서 해결방안을 찾으리라는 예상에 근거한 것이었다.
북한이 IAEA에 보낸 서한내용으로 보아 타협의 여지를 남겨놓고 있기는 하다. 북한과 미국의 고위급회담에서 핵문제의 일괄타결이 이루어진다면 샘플채취에 대비한 연료봉의 보관을 허용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또 IAEA나 미국측도 북한측의 통고에도 불구하고 예정된 추가 및 후속사찰을 진행,그 결과를 보고 대응방안을 정하겠다는 태도를 보이고 있다.
IAEA 사찰단은 방사화학실험실에 대한 추가사찰뿐 아니라 이번에 연료봉 교체를 하겠다는 실험용 원자로에 설치돼 있는 감시카메라의 배터리와 필름교체,봉인 확인 등의 기초적 활동은 할 예정이다. 그 사찰결과를 보고 미국은 북한과의 3단계 회담여부를 정한다는 방침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이 연료봉 교체를 강행하고 나선 것은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기 위한 전략일지는 모르나 결코 현명한 선택은 못된다. 북한이 IAEA의 샘플채취없이 그런 행위를 하는 것은 핵물질 추출사실을 숨기려 한다는 국제사회의 의혹을 더욱 굳혀줄 뿐이다. 뿐만 아니라 북한이 바라는 미국과의 대화도 불가능해지고 유엔안보리를 통한 제재로 이어져 위기로 갈 가능성이 크다.
국제사회는 더이상 북한의 그러한 위험한 도박에 인내할만한 여유가 없다. 대화의 가능성이 있을 때 타협의 길을 찾을 것을 북한측에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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