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위의 개헌논의 제기(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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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우리나라에서 개헌문제는 항상 민감하다. 50년이 채 안되는 헌정사에서 아홉번이나 개헌을 했으면서도 개헌논의는 항상 조심스럽고,먼저 말을 꺼내기를 꺼려하는 분위기다. 그 까닭은 두말할 필요도 없어 지난날 대부분의 개헌이 집권세력의 불순한 의도로 자행됐기 때문이다. 이번에 21세기위원회가 개헌론의 대비 필요성을 제기하자마자 큰 관심거리가 되는 것도 이런 과거의 경험 때문일 것이다.
21세기위는 96년의 총선거를 전후해 개헌논의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으며,통일과 대북한 관계의 변화에 따라서도 개헌논의가 촉발될 수 있다고 전망하고,여기에 대비한 검토와 준비가 필요하다고 건의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측은 서둘러 그것은 학자들의 의견일 뿐이며,김영삼대통령 임기중 개헌을 안할 것이라는 입장을 재천명했다.
우리는 김 정부의 임기가 이제 겨우 1년 남짓 지난 이 시기에 개헌논의가 나올 여지가 없다고 보지만 21세기의 문제인식 자체에는 원천적으로 수긍이 간다.
우선 3대째인 단임대통령제의 운영경험이 선진화로 가는 21세기의 국가경영에 적합하냐는 문제제기는 당연히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먼 일이 아닌,언제 닥칠지도 모를 통일문제에 대비하기 위해선 현 체제가 과연 적합하냐는 문제제기 역시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단임대통령제의 경험은 우리 헌정사에 처음으로 평화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고 장기집권을 봉쇄하는 긍정적 측면도 있었지만 적잖은 회의를 불러일으킨 것도 사실이다. 대통령임기중 중간평가의 기회가 없는데서 오는 정권의 경직성,단임기간중 업적을 남기기 위한 독주가능성,대통령과 의원의 임기가 계속 어긋나는데서 빚어지는 헌정운영의 어려움 등은 그동안 정계·학계 등에서 단임제의 문제점으로,실은 알게 모르게 지적돼온 것들이다.
또 21세기위의 지적대로 최근 북한 정세를 보면 돌발통일의 가능성에 우리가 대비하지 않으면 안되고,대북관계의 변화를 수용할 우리 체제의 문제는 시급한 검토과제가 되고 있다. 요컨대 21세기의 선진화와 통일이라는 두가지 당면과제를 생각한다면 21세기위가 건의한대로 개헌문제에 대한 연구·검토는 필요한 일이다.
다만 이 문제를 과거 늘 그랬듯이 국내 정치차원에서 여아간에 쟁점화해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우리가 보기에 이미 우리나라에서는 어떤 정권이라도 과거처럼 집권연장이나 권력강화라는 불순한 정치의도에서 개헌을 추진할 수는 없게 되어 있다. 정권이 그럴 힘도 없으려니와 그런 의도에 끌려가기에는 우리 사회의 힘과 민도가 너무 크고 높다.
이 단계에서 내각제냐,대통령제냐는 등의 성급한 헌법논쟁은 무익하다. 다만 선진화된 국가경영과 바람직한 정계구조를 실현하고,통일과 대북관계에 대비하는 헌법연구와 검토는 조용하고 냉정하게 정부·학계·정치권 나름대로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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